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한봉수의병 활동지 - 문백면 옥성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2015년 청주 오창읍~용인시 양지면 구간의 17번 국도가 왕복4차로로 새롭게 확장·개통되면서 한봉수 의병활동지 앞을 통과하는 구17번 국도의 교통량은 크게 감소하였다. ‘의병장청주한공봉수항일의거비’에 올라가는 계단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
| 정의 | 1908년 6월 10일 한봉수 의병장이 일본 헌병 기마대를 습격하여 호위대를 사살하고 우편행랑을 노획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7년 6월 10일 의병장 한봉수 의거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한봉수(韓鳳洙)/김규환(金奎煥)/김경화(金慶化)/서순명(徐順明) |
| 관련 내용 |
1908년 6월 10일 한봉수(1883~1972)는 김규환 및 그 부하 6~7명과 함께 지금의 문백면 옥성리에서 일본 헌병 2명이 통과함을 확인하였다. 그는 작전에 돌입, 인근 보리밭에 매복해 있다가 상등병 시마자끼(島崎善治)를 사살하고 일본헌병대의 군수품도 노획하였다. 일대 바위백이는 당시 죽은 말을 묻었다고 하여 지금도 바위백이 말무덤이라고 불리고 있다. 현재 의거지인 문백면의 17번 국도변에는 1934년 제국재향군인회 진천군분회가 시마자끼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직비가 서있다. 1977년 문백면 유지들도 한봉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같은 장소에 의병장청주한공봉수항일의거비(義兵將淸州韓公鳳洙抗日義擧비)를 건립, 역사의 명암이 짙게 대비되고 있다. 정부는 한봉수에게 건국훈장 독립장(1963)을 수여하였다. |
| 참고 문헌 |
「한봉수 판결문」(1910년 5월 6일, 공주지방재판소청주지부). 「한봉수 판결문」(1910년 6월 29일, 공주지방재판소청주지부). 「한봉수 판결문」(1910년 8월 29일, 경성공소원).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57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 1-의병항쟁 재판기록, 1974, 391쪽. 박걸순,『구한말 의병장 한봉수의 항일투쟁』, 한봉수의병장동상건립추진위원회, 1998, 95쪽. 박걸순,『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국학자료원, 2012, 128쪽. 정제우,「진천의 의병전쟁」,『상산문화』, 상산고적회, 2000, 69쪽. 충북대학교 박물관,『진천군 문화유적분포지도』, 2001, 187쪽. 박경목, 「충북지역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사적지의 보존과 활용」,『중원문화연구』20, 2013, 8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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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백락면 옥성리 |
|---|---|
|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547-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봉수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가 세운 일본 상등병 순직비가 있으며, 문백면민들이 세운 의병장청주한공봉수항일의거비(義兵將淸州韓公鳳洙抗日義擧碑)가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문백면 옥성리 한봉수 의병활동지 전경(왼쪽 하단 도기선치 순직비와 중앙 상당 한공봉수항일의거비)
시마자끼[島崎善治]순직비(조선총독부에서 세움)
의병장 한봉수항일의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