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유지명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거의 폐허가 된 상태로 고물 등이 수집되어 있어 집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
| 정의 | 전북과 충남 등지에서 활약한 삼남의병대장 유지명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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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유지명(柳志明, 1881~1909)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분격해 같은 해 9월 초순 경부터 스스로 창의대장·삼남의병대장이라 칭하고 의병 수백 명을 모집·창의하였다. 당시 군자금 확보를 위해 호남의 대부호인 김진사(金進士)의 마름 이성순(李聖順) 외 수십 명에게 도조 수백 석을 보관해둔다는 내용의 문서로 군량을 징발하였고, 비봉면 내월리의 유치복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였다. 1907년 10월 3일 밤 정성일(丁成一)·김치삼(金致三) 등 수십 명을 이끌고 용담군 읍내에 들어가 일본인 2명을 죽이고, 친일경찰 정상권(鄭尙權)을 공격해 무기를 탈취하였다. 충남 은진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1908년 7월 13일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었다가 탈출했으나, 1909년 1월 23일 다시 체포되었다. 3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했으나 형이 확정되어 교수형을 당하였다. 1977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유지명 판결문」, 대심원, 1909년 6월 5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1-의병항쟁재판기록, 1974, 665-667·703-704·707-708·84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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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고산군 운서하도면 고성리 |
|---|---|
| 주소 | 전북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528 |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평2길 10 |
| 위치 고증 | 「유지명 판결문」과『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 1권에 관련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구체적인 위치는 현재 이 집에 거주하는 유지명의 손녀 유재순(82)의 증언을 통해 확인하였다. |














위에서 바라본 유지명 집 안채 터(검은 비닐하우스)
위에서 바라본 유지명 집터
유지명 집터 입구
유지명 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