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유장열 집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현재 빈집이지만, 외손인 황사택이 관리하고 있어 주변과 가옥은 양호한 편이다. |
| 정의 | 광복단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모집 활동 등을 전개한 유장렬이 출옥 후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독립의군부/광복단 |
| 관련 인물 | 박경석(朴景錫)/채복만(蔡福萬)/한훈(韓焄)/임병찬(林炳瓚) |
| 관련 내용 |
유장렬(柳璋烈, 1878~1966)은 전라북도 고창군 오동면 출신이다. 1909년 전라북도 일대에서 박경석(朴景錫)·채복만(蔡福萬) 등 수많은 의병들을 이끌고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12년 말 한훈(韓焄) 등과 함께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항일비밀결사인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가입하여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국권반환요구서 및 일본군철병요구서를 제출하였다. 1913년 한훈 등과 같이 경상북도 풍기에서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국내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전라도에서 친일파 양재학(梁在學)·서도현(徐道賢) 등을 사살하고, 오성헌병분견소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였다. 1919년 고창의 부호 김기팔(金箕八)의 집을 습격하여 독립운동자금 2,600여 원을 징수한 뒤 계속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10월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2년형을 언도받고 전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서도현 등 사살건 등이 추가로 발각되어 1922년 11월 징역 5년형이 추가 구형되어 전주 및 광주감옥 등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익산으로 옮겨 계속하여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유장렬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7, 1976, 256~261·342~34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 1974, 664~665·721~722쪽. 이기화 편저, 『고창의 맥』, 고창문화원, 1991, 188~19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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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어관리 |
|---|---|
| 주소 | 전북 익산시 어양동 236 |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어곳1길 11 |
| 위치 고증 | 「유장렬 공적조서」와 『독립운동사』 7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외손인 황사택(60, 익산시 어양동)에 의하면 고창에서 익산으로 온 유장렬은 사망할 때까지 딸과 함께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














유장열
유장열 집 우측
유장열 집 전면 좌측
유장열 집 후면 좌측
유장열 집 전면 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