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용구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김용구가 살았던 집은 1908년경 일본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 후 새 가옥이 건축되었다. |
| 정의 | 1907~1908년 영광·장성·고창·무장 등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던 김용구가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
| 관련 인물 | 기삼연(奇參衍)/이영화/이철형 |
| 관련 내용 | 김용구(金容球, 1861~1919)의 자는 유성(有聲), 호는 후은(後隱), 이명은 김유성(金有成)이다. 1907년 10월 30일(음 9.24) 기삼연을 중심으로 장성 수연산 석수암에서 결성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 참여하여 통령(統領)이 되었다. 1908년 2월 2일의 음력 설날 기삼연이 체포되어 총살당한 후 호남창의회맹소의 지도부는 거의 붕괴 상태의 본진을 신속하게 재편하였다. 김용구는 대체로 동향의 일심계원 출신인 이영화·이철형 등과 활동하였다. 이들은 약 150명 규모로 1908년 음력 5월까지 주로 영광·장성·고창·무장 등에서 활동하다가 해산하였다. 1919년 1월 26일 고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음독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2, 1971, 685~689쪽. 「김용구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강길원, 「후은 김용구의 항일투쟁」, 『인문논총』 16, 전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6, 69~90쪽. 김경성, 「후은 김용구의 의병운동에 대한 고찰 : 의소일기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9. 영광군지편찬위원회, 『영광군지』, 영광군, 1994, 220쪽. 강길원, 「후은 김용구의 항일투쟁」, 『인문논총』, 전북대, 1986, 75~77쪽. 홍영기, 「한말 전라남도 영광지방의 의병에 대한 일고찰」, 『역사와 사회』, 현암사, 1997, 359~38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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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화평리 |
|---|---|
| 주소 | 전남 영광군 대마면 화평리 67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의소일기」에 김용구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고, 고광순의 집을 일본군이 불태울 때 김용구의 집도 같이 불태워졌다는 내용이 있다. 공적조서에서 주소를 확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후손이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김용구 집터(2023년 촬영)
김용구 집터(2023년 촬영)
김용구 집터 전경(2023년 촬영)
김용구에 대한 일제측 기록(『폭도에 관한 편책』, 1908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