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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심남일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심남일이 살았던 집은 없어졌다.
정의 1907~1908년 호남지역 후기의병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심남일 의병장이 살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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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내용 심수택(沈守澤, 1871~1910)의 자는 덕홍(德弘), 호는 남일(南一)이다. 남일은 전남 제일의 의병장이라는 뜻이다. 1907년 말부터 다음해 봄까지 김율(金聿)의 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김율 사후 1908년 음력 2월경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형성하고 의병장이 되었다. 김율 의병부대에 속해 있던 상당수의 의병들이 심남일 의병부대의 근간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스스로‘호남의소(湖南義所)’라 표방하였고, 당시 신문에서는‘남일파’(南一派)라 불려졌다. 나주·함평·강진·장흥·해남 등 전라남도 중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서로는 전해산 의병부대, 동으로는 안규홍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일본 군경을 공격하였다.

1909년에 11개 의병부대가 호남동의단을 결성하여 강력히 투쟁하자 일제는 이른바‘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자행하였다. 심남일은 일제의 강력한 군사작전을 정면 대응할 수 없자 부대를 해산한 후 후일을 도모하였다. 부대장 강무경((姜武景) 등과 함께 장흥과 화순의 경계에 위치한 풍치의 바위굴 안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1909년 8월 26일(음) 체포되어, 1910년 9월 2일(음)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심남일 의병부대는 1908년 초반부터 호남지역 후기의병을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대한매일신보』, 1908년 11월 26일,「남일파 번성」.
『황성신문』, 1908년 12월 22일,「호남폭경」.
『대한매일신보』, 1909년 4월 13일,「남일파 분파」.
『대한매일신보』, 1909년 10월 16일,「의병장 피착」.
『폭도에 관한 편책』, 1909년 12월 27일,「폭도수괴취조의 건」.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604-60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2-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561-5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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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함평군 대야면 산정동
주소 전남 함평군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자료집』2과『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등에서 심남일의 활동을 확인하였으며, 「폭도수괴취조의 건」에서 주소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후손 심만섭(1943년생, 함평 거주)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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