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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병환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생가가 멸실되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밀양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의열단원으로 경북폭탄사건 등 의열투쟁에 참여하는 한편, 신간회 등 사회운동도 활발히 전개한 김병환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1920 의열단 제1차암살파괴의거/1926 경북폭탄의거
관련 조직 의열단/신간회 밀양지회/밀양청년연맹/밀양차가인동맹 
관련 인물 윤치형/윤세주/이병철/곽재기/이성우/이종암/배중세/한봉인
관련 내용 김병환(金餠煥, 1889~1947)은 밀양면 내일동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윤치형(尹致衡)·윤세주(尹世胄) 등이 주도한 밀양면 밀양장터에서의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로 인해 1919년 4월 징역 6월을 언도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의열단(義烈團)의 제1차 암살 파괴의거에 참여하여 이병철(李炳喆)이 운반하여 온 폭탄을 본인의 상점에 숨겨두었다가, 6월 곽재기(郭在驥)·이성우(李成宇)·윤세주 등이 서울 인사동에서 체포됨에 따라 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1921년 6월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5년 11월 밀양청년연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의열단 활동도 계속하였다. 1926년 11월 의열단 국내공작원으로 일명 경북폭탄사건에 연루되어 이종암(李鍾岩)·배중세(裵重世)·한봉인(韓鳳仁) 등이 체포되었을 때 함께 검거되었다가 1926년 1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1927년 11월 밀양공립농잠학교 학생 맹휴 때 학부형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12월 11일에는 신간회 밀양지회 창립준비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2월 19일에 열린 제1회 정기대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1929년 11월 창립된 밀양차가인동맹(密陽借家人同盟)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지적원도」, 1912.
「이종암 등 9인 판결문」, 1926년 11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곽재기 등 15인 판결문」, 1921년 6월 2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권재호 등 20인 판결문」, 1919년 4월 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 『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27·74~75쪽.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234~236쪽.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백양당, 1947, 32~42·182~18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1, 1976, 387~412·660~673쪽.
김영범,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 비평사, 1997.
김영범, 『의열투쟁 1 - 1920년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47~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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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내이동 848
주소 경남 밀양시 내이동 848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권재호 등 20인 판결문」, 「곽재기 등 15인 판결문」, 「이종암 등 9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김병환 관련 판결문에 기재된 주소지를 근간으로 「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지적원도」와 현재의 지적원도를 상호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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