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추자도 어민항쟁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독립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멸실 / 포구 확장공사로 인해 ‘절골포구’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포구 주변에는 각종 음식점, 마트, 민박집 등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32년 추자면 영흥리 어민들이 일제의 어업 정책에 항거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32 사와다 그물망 사건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봉수(金奉守), 박병석(朴炳碩), 이사문(李仕文), 추남수(秋南洙), 김득수(金得守), 박천석(朴千石), 원일개(元一凱), 고일주(高日柱), 원용현(元容賢), 박복순(朴福順), 고태욱(高泰旭) |
| 관련 내용 |
1930년대 추자도는 어업과 상업이 일본 이주 어민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다. 일본 어민들에 의해 분기초망어업과 유자망어업이 이루어지면서 대량으로 잡힌 멸치와 삼치가 싼 값에 판매되어 버려 추자도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왔다. 특히 어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생활하던 영흥리 어민들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게 되자 영흥리 어민 100여 명은 절골포구(현 영흥리 마을회관 앞 공터)에 모여 유자망어업을 나가는 사와다[澤田]의 배에서 어로 도구와 그물을 끌어내리며 추자면 내수면에서의 유자망 어업금지를 외치면서 항거했다. 이 사건은 일명 '사와다 그물망 사건'으로 알려졌으며, 관련 주동자들이 검거되었다. 1932년 7월 8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소요죄로 영흥리 주민 김봉수(金奉守)와 박병석(朴炳碩)이 각각 징역 7월, 이사문(李仕文)·추남수(秋南洙)·김득수(金得守)·박천석(朴千石)·원일개(元一凱)·고일주(高日柱)·원용현(元容賢)·박복순(朴福順)·고태욱(高泰旭) 등이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언도받았다. |
| 참고 문헌 |
『제민일보』, 1999년 2월 28일, 「사와다 그물망 사건을 아십니까」. 제주도지편찬위원회,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577쪽. 추자도지편찬위원회, 『추자도』, 선진인쇄사, 1999, 70~71·301쪽. 명재림, 「일제강점기 추자도의 어민항쟁」,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27~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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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추자면 영흥리 367 일대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추자면 추자로 72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제민일보』 1999년 2월 28일자와 『추자도』 및 「일제강점기 추자도의 어민항쟁」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위차가 기록되어 있다. |














추자도 어민항쟁지 전경(2019)
추자도 어민항쟁지 전경(2019)
추자도 어민항쟁지 전경(2019)
추자도 어민항쟁지 전경(2019)
추자도 어민항쟁지 전경(2019)
추자도 어민항쟁지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