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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송계월 하숙 터 - 광주학생운동 제2차 서울학생 항일시위 모의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가옥
상태 완전변형 / 일부가 양옥으로 개축되었으며, 길가 부분은 현재 전통한옥으로 보수 복원되었다.
정의 1930년 1월 14일 저녁 경성여자상업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등 서울시내 각 여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자들이 모여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제2차 서울 학생시위를 준비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30 제2차 서울학생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허정숙(許貞淑)/최복순(崔福順)/장홍염(張洪琰)
관련 내용 1930년 1월 초순 들어 광주학생운동 제1차 서울학생시위로 휴교 또는 조기방학에 들어간 학교들이 하나씩 개학하면서 학생들의 제2차 궐기 준비 또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서울학생시위 과정에서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청년회장 최복순과 경성여자상업학교의 송계월(宋桂月, 1911∼1933) 등 여학생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복순과 송계월은 1월 9일경부터 근우회 서무부장 허정숙, 휘문고등보통학교의 장홍염과 연락을 가지며 2차 궐기 준비에 들어가 격문과 크고 작은 태극기 100여 매를 만들었다. 그리고 1월 14일 저녁 경성부 가회동 48번지 송계월의 하숙방에 진명·숙명·근화·실천·미술·여상·정신·배화·동덕·이화 등 여학교와 휘문고보 학생 대표자를 소집하여, 15일 오전 9시를 기해 각자 교내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가두로 나와 종로로 집결할 것을 결의하였다.

계획한 대로 1월 15일 오전 10시를 전후해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경신학교·중동학교·보성전문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 등 시내 각급 학교 학생 5천여 명은 교내에서 궐기대회를 갖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두진출을 시도하였다. 비록 일제 경찰의 강력한 제지에 부딪쳐 경신학교와 중동학교 학생 일부가 거리로 나오는데 그쳤지만, 학생들의 항일시위는 16일과 17일에도 계속되었다. 16일에는 경성여자상업학교·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경성보육학교 등의 여학교와 협성실업학교 학생들이 궐기대회를 갖고 시위를 벌였으며, 17일에는 배재고등보통학교, 기독교청년학관, 실업전수학교 등 각 학교 학생들의 궐기대회가 이어졌고 시내 곳곳에는 격문이 배포되었다. 이처럼 학생들의 항일시위가 연일 이어지자 17일 일제 당국은 시위에 참가한 모든 학교에 휴교 조치를 내렸다.
참고 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51, 2002, 37∼38·250∼252쪽.
『동아일보』, 1930년 3월 19일, 「市內 女生 萬歲事件 第一回公判 開廷, 公訴事實 要略」.
김호일, 『한국근대학생운동사』, 선인, 2005, 271∼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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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가회동 48
주소 서울 종로구 가회동 48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작성한 서울여학생동맹휴교사건과 관련한「공판청구서(1930.2.10)」(『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51)와『동아일보』1930년 3월 19일자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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