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심훈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문화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천주교 흑석동교회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농촌계몽운동을 다룬 소설『상록수』로 유명한 민족문학가 심훈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1925 철필구락부사건 |
|---|---|
| 관련 조직 | 염군사/극문회/철필구락부 |
| 관련 인물 | 박헌영(朴憲泳)/임원근(林元根)/최용신(崔容信) |
| 관련 내용 |
심훈(沈勳, 1901∼1936)은 경기도 시흥 출신으로,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1915년 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으로 투옥되어 퇴학을 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난징[南京] 등지를 돌아 다니다가 1921년 항저우[杭州] 지강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1923년 귀국 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내세운 염군사(焰群社)의 연극부에 가담해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였고, 192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1925년 5월‘철필구락부사건(鐵筆俱樂部事件)’으로 박헌영·임원근 등과 함께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6개월 뒤에 돌아와 영화「먼동이 틀 때」를 각색·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28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영화평론으로 프로 작가들과 논쟁을 벌였다. 1931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이듬해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가 창작에 힘을 쏟았다. 1933년 8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잠시 근무했으며, 1935년 8월 최용신의 실화와 자신의 농촌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상록수』를 집필하여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었다. 1936년 6월『상록수』를 직접 각색·감독해 영화로 만들고자 했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급서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심대섭(심훈)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3, 국사편찬위원회, 1990, 291∼292쪽. 「신봉조 등 73인 판결문」, 1919년 11월 6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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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시흥군 북면 흑석리 176 |
|---|---|
| 주소 | 서울 동작구 흑석동 17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1919년 3월 7일 경무총감부의 「심대섭(심훈) 신문조서」 및 「신봉조 등 73인 판결문」 등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시흥군 북면 흑석리 176번지는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7번지로 지번이 통합된 상태이다. |














심훈 생가 터 - 현 천주교 흑석동교회
심훈
심훈 생가 터 - 현 천주교 흑석동교회(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