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원조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군자금 모집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김원조의 생가는 개축하여 현재는 김원조의 손자 김홍섭씨 내외가 거주하고 있다. |
| 정의 | 만주 대한군정부 부원으로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던 김원조가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0 독립단 사건 |
|---|---|
| 관련 조직 | 대한군정부 |
| 관련 인물 | 허원(許垣)/윤홍선(尹弘善)/이정호(李定鎬) |
| 관련 내용 |
독립단원 김원조(金遠祚, 1884.06.05~1922.4.15)는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해 대한군정부에 가입하였다. 군정부의 연락기관을 국내에 설치하기 위한 군자금의 모집을 위해 1920년 1월 2일 서울 낙원동에 사는 부호 신완식의 집에 나타나 군자금을 내놓으라고 주인을 협박하여 현금 120원과 군자금 2만원을 제공하겠다는 증서를 쓰게 해 이를 수취하여 사라졌으며, 같은 달 25일에 서울 내자동 김상윤의 집과 2월 10일 시내 조정윤의 집에 나타나 군자금과 서류를 탈취한 사건을 일으켰다. 김원조는 10개월 후 1920년 12월 고향인 이천군 율면 총곡리(叢谷里)에 은신하던 중 허원, 윤홍선, 이정호와 함께 독립단 사건의 주모자로 그 외 사람은 장물수수죄로 체포되었다. 김원조는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살이 도중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사(피살되었다고 전함)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매일신보』, 1921년 3월 9일, 「군자금이라 칭하고 일만 오천원 강탈, 군정부와 연락할 기관을 경성에 설치코져 모집해」. 『매일신보』, 1921년 3월 9일 ; 《동아일보》1921.4.3. 이인수 등,『이천독립운동사』, 이천시·이천문화원, 1996, 335∼345쪽. 이인수,「독립투사 김원조」,『설봉문화』5호, 이천문화원, 1991, 13∼16쪽. 「김원조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이천군 율면 총곡리 |
|---|---|
| 주소 | 경기도 이천시 율면 총곡리 103-2번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공훈록』4권 및 이인수,「독립투사 김원조」(『설봉문화』제5호, 이천문화원, 1991년 봄) 등의 문헌자료와 김원조의 증손자 김홍섭(1932년생)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김원조의 생가는 이천군 율면 총곡리 103번지이며, 묘역은 충북 음성군 무극면 송곡2리 산 23번지 임오산에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