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괴산청년회관 터 - 신간회 괴산지회 사무실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2008년 조사 당시에는 괴산청년회관의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당시의 모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주변이 완전히 철거되어 새로 상가 및 연립주택이 들어섰다. |
| 정의 | 1927년 11월 26일 신간회 괴산지회 창립대회를 개최한 곳이며 신간회 괴산지회 사무실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7년 11월 26일 신간회 괴산지회 창립대회 |
|---|---|
| 관련 조직 | 신간회(新幹會) 괴산지회 |
| 관련 인물 | 안철수(安喆洙) |
| 관련 내용 |
신간회 괴산지회는 1927년 11월 26일 괴산청년회관에서 설립되었는데 이는 충북 최초였다. 또한 청년·노동·농민·사상운동 활동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에서 괴산청년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당시 괴산청년회 사무실을 지회 사무실로 사용했고, 괴산청년회 집행위원장이었던 안철수가 신간회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괴산지회 간부 18명 중 청년회 활동가가 13명에 달하였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신간회 괴산지회는 주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신간회 선전, 미신타파, 흑의착용, 조혼금지, 단연과 아편 추방, 매춘과 풍기 문제, 교양문제 등을 주제로 웅변대회와 연설회를 열었다. 특히 괴산지회의 총무간사회의 결의사항 중에는 검승리의 양반 자위대 해체의 건도 있어 괴산지회가 봉건 잔재를 해소에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일제는 신간회의 지회가 활발히 활동하게 되자 각 지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928년 5월 이른바 ‘괴산 신간회사건’이 발생하였고, 5월 13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신간회 괴산지회 간부들은 괴산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각 사회단체 회관이 수색 당했다. 이 사건 이후 괴산지회에 대한 일제의 감시는 더욱 심해져, 회의조차 개최하지 못했고, 결국 1931년 다른 지회와 함께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
| 참고 문헌 |
「槐山新幹支會 廿六日에 設立」, 『동아일보』, 1927년 12월 2일. 「槐山新幹事件」, 『조선일보』, 1928년 10월 24일. 「槐山新幹事件 全部無罪判决」, 『동아일보』, 1928년 11월 3일. 박걸순, 『괴산지방 항일독립운동사』, 괴산문화원, 1996, 175~189쪽. 최동일, 「신간회 괴산지회의 조직과 활동」, 『충북사학』 15, 충북대학교 사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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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 서부리 |
|---|---|
| 주소 | 충북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 213-2(읍내로 15길 4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7년 12월 2일자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2008년 조사 당시 이 지역에서 출생한 향토사학자 김근수와 이춘택의 증언을 통해 신간회 괴산지회 창립 당시 괴산청년회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신간회 괴산지회 탄압기사(『동아일보』, 1928년 2월 15일)
괴산청년회관 터 입구
신간회 괴산지회 설립 관련기사(『동아일보』, 1927년 12월 2일)
괴산청년회관 터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