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동청년회관 터 - 청년동맹 창립대회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교회 터는 시장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영동제일교회는 영동읍 계산로2길 19-36으로 이건하였다. |
| 정의 | 1926년 10월 영동군내 각 지역 청년들이 모여 영동청년동맹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영동청년동맹을 조직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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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장준(張埈), 장철(張喆), 김태수(金台洙), 김극수(金極洙), 이관(李官), 최판흥(崔判興), 추교경(秋敎慶) |
| 관련 내용 | 1926년 10월 충청북도 영동군 내에는 각지에 청년회가 조직되었다. 그후 각 청년회 간의 연락에 비밀이 유지되지 않자 효율적인 조직 구성을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18일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영동청년회관에서 양강의 장준·장철, 영동의 김태수·김극수·이관, 황간의 최판흥·추교경 등이 각 청년회의 대표자로 출석하여 영동청년동맹 창립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강령과 규약을 의결하고 역원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사무소를 영동청년회관 내에 두고, 그 명칭을 영동청년연맹이라 칭하였다. 연맹은 영동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이 됐다. 그러나 1927년 몇몇 간부들이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에 연루, 구속되면서 그 활동이 흐지부지 되었다. |
| 참고 문헌 |
「장준 외 6인 판결문」(1928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 「장준 외 10인 판결문」(1934년 7월 20일, 경성복심법원). 강호출, 「식민지시대충북영동지역농민운동연구」, 『사총』39, 고대사학회, 1991, 69~104쪽. 박걸순, 「일제강점기 충북 영동지역의 민족운동」,『동학학보』48,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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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
|---|---|
| 주소 | 충청북도 영동군 계산리 694-16(영산로 1길 13-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장준 외 6인 판결문」 등을 통해서 영동청년회관에서 영동청년연맹이 조직되었음을 확인하였다. 2008년 현지조사에서 영동문화원 김윤호(계산리 거주)의 증언으로 당시 영동청년회관 터는 당시 영동제일교회 자리임을 확인하였다. 현재는 영동시장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영동 제일교회는 영동 초등학교, 영동 도서관 인근인 영동읍 계산로2길 19-36(지번주소 계산리 675-3)로 이건하였다. |














영동청년회관 터 전경
영동청년회관 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