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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상렬 순국지 - 전장골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현재 주변이 경작지로 변해 있으며, 의병전투와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정의 1896년 서상렬의병장이 순국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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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선이(金仙伊)
관련 내용 서상렬(徐相烈, 1854~1896)은 충청북도 단양 출신이다.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곧이어 11월 15일 단발령이 선포되자 거의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는 이필희(李弼熙)·오인영(吳寅泳)·배시석(裵是碩)과 더불어 단양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제천으로 달려갔다.
12월 8일(음력) 단양에 이르러 관군과 접전할 때 아군을 미리 매복시키고 좌우에서 협공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3월 20일(음력) 맹세한 후 적에게 부화뇌동한 류인형(柳仁馨) 등 군수를 베고,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상주에서 진을 치고 왜군에 대항하였다. 다른 의진은 구성이 부실하여 큰 공을 세우지 못하였으나, 서상렬 의진은 적 수십 명을 죽이고 예천으로 회군하였다. 이 때 관찰사 이남규(李南奎)·이중하(李重夏)가 대구·안동을 거점으로 의진을 집중 공격해 왔다. 서상렬 의진은 전세가 불리하자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고 제천으로 돌아왔다. 제천에서 서상렬은 여러 의병장들 즉, 이춘영 · 안승우 · 이필희 · 김백선 등과 함께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서상렬은 유인석의 명을 받고 단양으로 나아가 방비했으나 며칠 후 호좌의진이 무너지고 안승우(安承禹)·홍사구(洪思九)의 전사 소식을 듣고 비분을 금치 못하였다. 이에 영춘을 거쳐 정선으로 나아가 유인석에게 서북으로 진출할 것을 권하였다. 도중에 여러 차례 적과 접전하였는데 6월 12일(음력) 낭천(현 화천)에 이르러 적의 공격을 받고 마침내 순국하였다. 서상렬의 시중을 들어오던 김선이(金仙伊)도 끝까지 적을 꾸짖으며, 서상렬을 방어하다가 함께 순절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27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167-178쪽.
오영섭,『화서학파의 사상과 민족운동』, 국학자료원, 1999, 246-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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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춘천부 낭천군 군내면 아리
주소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전장골길 69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육의사열전」(『독립운동사자료집』1권)에“서상렬은 7월22일(음. 6월 12일) 낭천읍 싸움에서 또 장렬하게 순절하니”라는 기사가 나오는데, 낭천읍은 현재의 화천읍이다. 화천문화원의 고증을 받아‘전장골’로 불리우는 아5리의 순국지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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