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운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불탄 자리에는 현대식 건물의 교사가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23일 일본인 교장의 독립운동 방해에 반발하여 김수남 등이 방화사건을 일으킨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4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동맹퇴학원 제출사건/1919.3.23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 |
|---|---|
| 관련 조직 | 영명학교/군산공립보통학교 |
| 관련 인물 | 김학구(金學逑)/나명조(羅明祚)/신형식(申亨植)/김수남(金壽男)/이남율(李南律) |
| 관련 내용 |
군산공립보통학교는 일본인 교장의 관리와 경계가 엄하여 3·1만세운동이 파급되어 오는데도 영명학교(永明學校)와 같이 학생과 교사가 합심하여 시위운동을 주도할 수 없었다. 이에 1919년 3월 14일 김학구·나명조·신형식 등은 학생 70여 명을 선도하여 동맹을 하고 연서로 퇴학서류를 제출하여 항거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학교 측은 당황하여 학부형을 소환·압박하여 학교로 복귀하도록 하였다. 이후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 김수남·이남율 등은 독립운동에 저해되는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불태워 없애버리자는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23일 밤 김수남 등은 약국에서 알코올과 솜을 준비하여 교사 동쪽 승강구에 불을 질렀다. 이 불로 학교는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주동자인 김수남은 징역 10년, 이남률은 7년 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군산공립보통학교는 1907년 4월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해 5월 개교하였다. 군산공립보통학교는 1907년 4월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해 5월 개교하였다. 1911년 4월 군산공립보통학교, 1929년 4월 군산제일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34년 1월 다시 군산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96년 3월 군산중앙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 참고 문헌 |
「이남률 등 2인 판결문」, 1919년 9월 2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권재길 등 8인 판결문」, 1919년 5월 2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병헌,『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 출판국, 1959, 902~90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25~527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9, 1977, 284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념탑건립추진위원회,『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449쪽. 김양규,『우리 고장의 항일운동사 - 옥구농민의 항일항쟁사』, 군산문화원, 2001, 140~14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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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군산부 소화통 2정목 |
|---|---|
| 주소 | 전북 군산시 중앙로 9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권재길 등 8인 판결문」및「이남률 등 2인 판결문」과『독립운동사』3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군산공립학교는 현재 중앙초등학교이며,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 |














김수남(당시 군산공립보통학교생)
군산공립보통학교 조회 광경
방화 전의 군산공립보통학교
군산중앙초등학교 전경
군산공립보통학교 터 - 현 군산중앙초등학교 전경
군산중앙초등학교 입구
군산중앙초등학교 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