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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윤숙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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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건물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빈터로 방치되어 있다.
정의 회문산 일대를 무대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던 양윤숙이 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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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관련 내용 양춘영(楊春泳, 1875~1910)의 자는 윤숙(允淑)이며, 호는 춘계(春溪)이다. 별명은 인영(寅泳)·연영(演泳)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윤숙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최익현(崔益鉉)·임병찬(林炳瓚)이 일으킨 의진에 스스로 모집한 포수 수십 명을 데리고 참여함으로써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익현·임병찬 의진이 무너지고 체포된 의병장들이 대마도에 억류되자 한동안 은거하며 때를 기다렸다. 1907년 활동을 재개한 그는 1908년 7월 회문산 일대의 의병 120명을 규합하여 호남의군부(湖南義軍府)를 조직하고 도총독이 되었다.

양윤숙은 좌선봉 최화(崔華), 우선봉 임순호(林洵豪), 중군 최산흥(崔山興), 후군 이국찬(李國贊), 향관(餉官) 서기협(徐基俠), 교련관 한자선(韓自善)으로 의진을 구성한 다음 순창수비대, 남원 수비대를 공격하게 하였다. 또한 1909년 1월에는 일본헌병대·일본군수비기마대·일경주재소 등을 야습, 방화하여 일본군 다수를 사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양윤숙 판결문」,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10년 3월 9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378·64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2-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732쪽.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전북의병사』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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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국화촌
주소 전북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 10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양윤숙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번은 국화촌에 거주하는 최진구(80) 및 현재 소유자 양구덕의 증언을 통해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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