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치언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집터는 그대로이나 건축물은 완전 변형된 상태로 그간 여러 차례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
| 정의 | 군대해산령 이후 순창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한 진치언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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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진치언(陳致彦, 1877~1909)은 1907년 군대해산령이 내려지자 동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전답을 처분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후일 김경관(金京觀)이 이끄는 부대에 들어가 순창군 유등면·오산면·적성면·인화면 등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유지들을 설득하여 군자금조달에 주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11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진치언 판결문」,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09년 4월 1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1-의병항쟁재판기록, 1974, 902-903쪽.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전북의병사』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59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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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
|---|---|
| 주소 | 전북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28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진치언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더불어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진치언의 문중과 현 거주자 김화옥의 증언을 통해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진치언 집터 본채
진치언 집터 마당
진치언 집터 근경
위에서 바라본 진치언 집터
진치언 집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