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운동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교사의 대부분은 현대식으로 변형되었으며 당시의 건물 1채가 남아있다. 학교 관계자들에 의하면 역사관을 설립하여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의 1920년대 고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사건과 S당 사건 등 항일학생운동이 전개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3.11.9 고창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1927.11.3 고창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1929.5 비밀결사 S당 사건/1930.1.20 고창고등보통학교 만세시위계획사건
관련 조직 S당 
관련 인물 양회영/유일석/윤욱하
관련 내용 고창고등보통학교는 3·1독립정신의 민족교육 정신을 승계한 교육전당으로서 무자격 교사의 배척 맹휴, 사상운동 등의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11월 9일에는 일본인교사가 민족차별을 하는 것에 대해 수업거부를 단행하였고, 1927년 11월 3일에는 교사 배척 등 3개 조건과 5개의 요구를 담은 진정서를 제출, 2학년생 전부가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당시 학교측에서는 주모자 4명에게 퇴학처분을 하였다.

1928년 10월 16일에는 2·3학년 전원이 교사배척과 학우회 전권을 학생 측에 달라는 것 등 23개조의 요구사항을 제출하고 동맹휴학을 결행하였다. 이에 학교 당국에서는 맹휴에 가담한 학생 11명을 퇴학시키고 58명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하였다.

1929년 5월에는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주모자가 되어 하월곡리의 유일석 가택에서 양회영 등 7명이 모여 비밀결사 S당을 조직하였는데 경찰이 가택을 수색하여 윤욱하 가택에서 규약과 초안이 발각되어 27명이 체포되었다.

1930년 1월 20일에는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계획하다 발각되자 경찰은 학생 집을 일일이 수색 검거하였다. 이로 인해 20여 명이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고창고등보통학교는 1918년 고창군 부안면 오산리에서 오산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1922년 고창의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1921년에 폐교된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사립고창고등보통학교라고 개칭하고 교촌리 향교 명륜당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23년 현재의 위치인 교촌리 성산기슭에 신축공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23년 11월 14일,「고창고보에 맹휴사건, 원인은 교원 배척」.
『동아일보』, 1927년 11월 13일,「고창고보도 동요, 네명 퇴학시킨 것이 큰 원인」.
『동아일보』, 1928년 10월 25일,「십일명에 출학처분, 맹휴생 전부 정학, 고창고보생 맹휴」.
『동아일보』, 1929년 6월 27일,「某種書類發覺으로 學生四名檢擧, 가택수사 중 서류 발견하고」.
『동아일보』, 1930년 1월 23일, 「고창고보생 이십여명 검거, 장날을 이용하려다가 발간, 격문과 가치 등 압수」.
고창중고등학교60년사편찬위원회, 『고창고보60년사』, 고창중고등학교, 1982, 835-847쪽.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 교촌리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246
도로명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50
위치 고증 『동아일보』1923년 11월 14일자, 1927년 11월 13일자, 1928년 10월 25일자, 1929년 6월 27일자, 1930년 1월 23일자 기사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고창고보60년사』에 당시 학교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고창고등보통학교는 현재 고창고등학교이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