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염재보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가옥은 멸실되었고 집터는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
| 정의 | 안규홍 의병부대의 부대장을 지낸 염재보가 살았던 집터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8. 파청전투 / 진산전투/ 원봉전투 / 1909. 남한폭도대토벌작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안규홍 |
| 관련 내용 |
염재보(廉在輔, 1863~1910)의 자는 인서(仁瑞), 본명은 재보(在輔), 별명은 염선달(廉先達)로 현재의 전남 보성군 문덕면 출신이다. 안규홍의 의진에 투신하여 부장(副將)에 임명되었다. 그는 안규홍 의병부대의 부대장으로서 1908년 2월경부터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峯) 등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1909년 후반 일제가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자행하자 더 이상의 항일투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규홍 등과 함께 의병을 일시 해산하고 훗날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안규홍과 염재보 등 의진의 지도부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자 가족들을 만나다 9월 25일 체포되고 말았다. 그 후 염재보 등은 광주에서 대구로 이감되어 그곳에서 1910년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孫德五 등 3인 판결문」, 대구공소원, 1910년 6월 2일. 「孫德五 등 3인 판결문」, 고등법원, 1910년 6월 21일. 「張仁初 판결문」, 대구공소원, 1910년 8월 20일. 염재업, 「종재재보행록」, 『노월헌유고』, 192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 1970, 607-60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 1971, 321쪽. 『보성군사』, 보성군사편찬위원회, 1995, 319·1572쪽.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일조각, 2004, 338-3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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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보성군 봉덕면 내동리 787 |
|---|---|
| 주소 | 전남 보성군 문덕면 양동리 76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손덕오 등 3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위치가 명기되어 있고 마을주민을 통해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염재보 집터(2022년 촬영)
염재보 집터 전경(2022년 촬영)
염재보 집터 전경(2022년 촬영)
염인서(재보) 등 판결문(대구공소원, 1910년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