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청운재 - 세등리야학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훼손 / 당시 건물이 상당부분 훼손되어 현재는 입구와 건물 일부만 남아 있다. |
| 정의 | 일제강점기 지역학생들에게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한 세등리야학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34 진도적색극단/1934 진도적색농민조합 |
|---|---|
| 관련 조직 | 독서회/세등리야학/유년구락부회/진도적색농민조합 |
| 관련 인물 | 곽재중/곽재인/곽재의/곽종언/곽재필(郭在必)/곽재술(郭在述)/곽병관/곽정배/박종춘(朴鍾春)/박종현/조규선(曺圭先)/박종협(朴鍾浹) |
| 관련 내용 |
조선후기 진도군 군일면의 세등리에 설립된 청운재(靑雲齋)는 일제강점기 개량서당으로 개편되어 ‘세등리서당’으로도 불렸다. 이 서당에서 곽재중·곽재인·곽재의·곽종언 등이 1933년 9월 사회과학연구를 위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또 1934년 3월 곽재필·곽재술·곽병관·곽정배 등이 세등리서당에 ‘세등리야학(細嶝里夜學)’이라 불린 노동야학을 설치하여 무산아동들을 가르쳤고, 4월에는 유년구락부도 서당에 부활시켰다. 한편 곽재필·곽재술·박종춘·박종협·조규선 등은 1934년 4월 17일 첨찰산 송림에서 진도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들 모두 세등리야학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해 가을 서당에서는 아동들에게 일제의 농촌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지도원의 강연:일명 농촌행진곡>이라는 소인극(素人劇)을 지도하고 세등리·둔전리 등에서 공연을 열어 주민들의 의식계몽을 꾀하다가 이른바 '진도적색극단사건'이 일어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미 해산된 진도적색농민조합도 발각되었다. 이들 중 곽재술·곽재필·박종협·조규선 등은 공판에 회부되어 전원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조선후기에 설립된 서당으로 곽의효·곽윤표 등이 기틀을 닦았으며, 1841년에는 서당 운영을 위한 학계(學契)가 조직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청운재는 개량서당이 되었으며 야학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입구와 제각만 남아 있다. |
| 참고 문헌 |
「조규선 등 4인 판결문」, 1936년 3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진도적색농민조합사건 검거에 관한 건」, 『사상범죄철』, 조선총독부, 1935. 「불온연극저서」,『 사상범죄철』, 조선총독부, 1935. 『조선중앙일보』, 1934년 12월 24일, 「 적색극단을 조직코 주의선전을 기도, 진도사건 검거내용」. 『동아일보』, 1936년 1월 17일, 「진도적농사건 21일 공판, 목포법원 지청에서」. 이종범, 「1920·30년대 진도지방의 농촌사정과 농민조합운동」, 『역사학보』109, 역사학회, 1986, 84∼86쪽. 박찬승, 「근현대 사회변동과 진도 동족마을 주민의 대응-식민지시기 세등리를 중심으로」,『지방사와 지방문화』3-2, 역사문화학회, 2000, 150·164·175쪽. 호남문화연구소,『진도군지』(하), 진도군지편찬위원회, 2007, 3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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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
|---|---|
| 주소 | 전남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산113-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규선 등 4인 판결문」·『사상범죄철』, 『조선중앙일보』1934년 12월 24일자 기사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세등리야학이 운영되었던 청운재의 입구와 제각이 남아 있어 당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세등리야학 관련기사(『조선중앙일보』, 1934년 12월 24일)
청운재 - 세등리야학 정면
세등리야학 공연 연극대본(『사상범죄철』)
청운재 - 세등리야학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