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현섭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당시의 모습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새로운 집이 들어 서 있다. |
| 정의 | 1910년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단식 자정순국한 이현섭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1895 명성왕후 시해/1910 강제병합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이현섭(李鉉燮, 1844∼1910)은 1885년 성균관 생원이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가, 1895년 일제가 명성왕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자행하자 통분을 참지 못하고 관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안동군 예안면 양평리(현 안동시 도산면 양평)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분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자결할 뜻을 세우고 “내 차라리 목이 잘릴지언정 어찌 오랑캐의 백성이 될까보냐”라는 자탄시(自嘆詩)를 남기고 단식을 시작하였다. 또 자식들에게 자신의 혼백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는 단식 21일 만인 1910년 11월 26일(음력 10월 25일)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말한 뒤 의관을 갖추고 자정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이현섭,『우헌선생실기』. 송상도,『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55, 189∼19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7, 1976, 245쪽. 김희곤,『안동 독립운동가 700인』, 안동시, 2001, 248∼2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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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중리 |
|---|---|
| 주소 | 경북 군위군 효령면 중구2리 42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기려수필』에 이현섭의 출신지가 군위군 중리로만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동네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중구2리 425번지가 이현섭이 살았던 집터임을 확인하였다. 또 이현섭의 묘가 중구2리 건너편인 거매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














『기려수필』(송상도, 1995년)
이현섭 집터 우측
이현섭 집터 좌측
이현섭 집터 전경
이현섭 집터 후면
이현섭 집터 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