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최천택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일부는 도로에 포함되고 일부는 새로 집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일제시기 부산청년연맹·신간회부산지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최천택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0.9.14 부산경찰서 폭탄투하사건(박재혁 의거) |
|---|---|
| 관련 조직 | 구세단(救世團)/부산청년연맹/신간회 부산지회 |
| 관련 인물 | 최천택(崔天澤)/최상훈(崔尙勳)/변봉금(卞鳳今)/박재혁(朴載赫)/김국태(金局泰)/김범부(金凡夫) |
| 관련 내용 |
최천택(1897~1962)은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립운동가인 당숙 최상훈과 숙모 변봉금의 영향을 받았으며 육영재와 사립육영학교에서 수학하고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재학시절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해 검거되기도 하였다. 1920년 9월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축배를 든 혐의로 검거되기도 하였다. 1924년에는 김국태와 함께 시대일보 부산지국을 설치 언론운동을 전개하고 또 서울파의 부산청년연맹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7월 신간회 부산지회 상무간사에 선임되었으며, 1929년 2월 신간회 부산지회 회장이 되었다. 또 그는 1941년 장건상 해외탈출사건과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의 형인 김범부의 해인사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등 부산지역에서 활발한 반제활동을 펼쳤다.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부산부 좌천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최천택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북도경찰부,『고등경찰요사』, 1934, 279쪽. 『동아일보』, 1927년 8월 1일, 「신간부산회 설립」. 『동아일보』, 1929년 2월 15일, 「신간지회 대회(부산)」.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1, 1976, 112~114쪽. 「부산경찰서 폭탄투하에 관한 건」, 1920년 10월 2일 ; 姜德相, 『現代史資料27 - 朝鮮 3』, みすず書房, 1970, 506~50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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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부산부 좌천동 496 |
|---|---|
| 주소 | 부산 동구 좌천동 496-2 |
| 도로명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 22 |
| 위치 고증 | 「부산경찰서 폭탄 투하에 관한 건」과 『동아일보』 1927년 8월 1일, 1929년 2월 15일 기사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최천택씨의 아들인 최철씨의 증언과「토지대장」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부산경찰서 의거 전날 박재혁(왼쪽)과 함께
상고학생시절 오택(왼쪽)과 함께
최천택
최천택 집터 전면
최천택 집터 우측면
최천택 집터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