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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밀양교회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문화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옛 교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정의 1921년 2월 10일에 있었던 밀양기독교청년회의 강연회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며 이후 각종 사회단체의 강연장으로 이용되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1 밀양기독교청년회 강연회사건
관련 조직 밀양기독교청년회/의열단 
관련 인물 고인덕(高仁德)
관련 내용 밀양교회는 1908년 고삼종(高三宗)의 자택에서 시작하여 1912년 2월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에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밀양교회가 읍내에 위치한 관계로 종교행사는 물론 1920년대 각종 강연회나 공연 등의 장소로 애용되었다. 따라서 밀양교회는 단순한 종교기관이라기보다는 밀양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중심기관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육영재나 연계소가 주로 연로한 유림이나 유생들이 모이는 장소였다면, 밀양교회 예배당은 청년들의 신문화 운동의 요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밀양에서는 3·1운동 이전부터 밀양기독교청년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1920년대 밀양지역 신문화 운동의 주체는 바로 청년층이었는데, 기독교계에서도 기독교청년회가 중심이 되었다. 밀양기독교청년회에서는 1921년 2월 10일 오후 8시 밀양교회에서 강연회를 개최했다. 연사는 밀양출신으로 의열단원이었던 고인덕이 초청되었다.

고인덕은 강연회에서 ‘안락의 본은 고초에 있다’라는 연제로 강연을 했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일제는 1921년 3월 22일 고인덕을 체포하고 3년의 형을 선고하였다. 고인덕은 밀양교회를 설립한 고삼종의 아들로 의열투쟁에도 관여하는 등 밀양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와 같은 인물이 밀양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밀양교회의 위치가 단순히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지역사회에 역할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참고 문헌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고인덕 등 판결문」, 1921년 5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33쪽.
밀양지편찬위원회,『밀양지』, 밀양문화원, 1987, 200쪽.
강만길 편,『밀양의 독립운동사』, 밀양문화원, 2003, 244∼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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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
주소 경남 밀양시 내일동 523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상설시장3길 7
위치 고증 「고인덕 등 판결문」과 『고등경찰관계적록』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지적원도」에 교회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이를 토대로 토지대장을 확인하고 현재 지적도와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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