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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운강선생창의일록』 편찬지 - 박약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건물
상태 원형보존 / 1993년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진주 강씨 종중에서 관리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진입로가 새로 조성되어 있고 주차장이 마련되었으며, 2017년 진주강씨유허비와 박약재비를 건립하였다.
정의 충북지역 의병장들의 본거지였으며, 이강년의 전투사인『운강선생창의일록』을 편찬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호좌의진(湖左義陣) 
관련 인물 유인석(柳麟錫)/이화중(李和重)/박정수(朴貞洙)/강순조(姜順照)/강유(姜瑜) / 이강년(李康秊)
관련 내용 박약재가 있는 마을을 거믄돌[烏石]이라고 하며, 진주 강씨가 오래전부터 세거하던 곳이다. 박약재의 전신은 염수재(念修齋)로, 1893년 진주 강씨 문중에서 효종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소한 상곡(商谷) 강유가 공부하던 터전에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세웠다. 이 지역은 제천에서 단양의 어상천 쪽으로 나가는 통로로, 의병들의 중요한 이동 통로였다.
유인석은 1905년 음력 3월 두 번째 망명에서 돌아와 제천을 찾았는데, 이곳에 강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강순희가 유인석의 글씨를 받아 강당의 이름을 염수재에서『논어』의 ‘박문약례(博文約禮)’ 구절을 따서 박약재(博約齋)로 바꾸었다.
을미의병이 마무리된 후 다시 의병이 일어나기까지의 과도기에 박약재는 의병론자들의 거점이 되었다. 박약재를 세운 진주 강씨 문중에서도 유인석의 영향을 받아 의병론자들이 전개한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자양영당을 건립할 때에도 건립 금액의 십분의 일 정도 되는 200냥을 내기도 했다.
이강년이 순국하면서 제천 지역에서의 의병 활동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의병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이강년의 공로를 기리고 의병 활동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박약재에서 이강년의 유고 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다. 1916년『운강선생유고』가 3책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 가운데 3책 「창의사실기」는 광복 이후 「운강선생창의일록」을 출판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운강선생유고』가 제천에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제천의병전시관 수장고에서 보관하고 있다.
박약재에서는 또한 1907년 천남전투 이후 일본군이 제천에 불을 지르면서 제천향교가 소실되자 불길에서 구해낸 성현들의 위패를 잠시 모시기도 하였으며, 1915년 제천의병 지도자인 유인석이 요동에서 별세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문인들이 분향소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중앙에는 대청마루를 조성하고 왼쪽에 방 2개, 오른쪽에 방 1개를 배치하였다. 현재 진주 강씨 종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지적원도』, 1915.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254-256·272-273·386쪽.
구완회, 「제천의병과 거믄돌 마을의 博約齋」,『한국독립운동사연구』67,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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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제천군 동면
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231(중말 16길 5-4)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한말의 제천의병』에 관련 사실이 서술되어 있으며,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조사한『지적원도』(1915)에서 강수빈이 관리하고 있던 사실이 확인되며 현재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231번지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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