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공주향교 강학루 터 - 오강표 순절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공주향교 내 강학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철거하여 현재 터만 남아 있다. |
| 정의 |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오강표가 통분하여 자결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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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내용 |
오강표(吳剛杓, 1843~1910)는 1843년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월가리에서 태어난 유학자이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을사늑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관찰사 이도재가 수리를 거절하자 죽음으로써 을사늑약과 일제침략을 항의하기 위하여 다량의 아편을 먹었으나 절명 직전에 가족에 의하여 구명되었다. 1910년 8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사(絶命詞)를 지어 공주의 명륜당으로 들어가서 절명사를 벽에 붙이고 강학루에 목을 매어 자결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공주향교는 1954년 문묘·명륜당·동재·존경각 등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공주향교내의 강학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철거하였다.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75호로 지정되었다. |
| 참고 문헌 |
『무이재집』 권 1, 「묘지」.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55, 163~164쪽. 한철호, 「無二齋 吳剛杓(1843~1910)의 생애와 항일순국」, 『사학연구』 75, 한국사학회, 2004, 221~22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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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공주군 남부면 교촌 |
|---|---|
| 주소 | 충남 공주시 교동 21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오강표의 동생인 오순표가 찬술한 오강표의 「묘지」『( 무이재집』 권1)에 관련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공주향교가 남아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오강표 순국기록(보성오씨세계 오강표 부분)
오강표 묘갈명(『무이재집』)
공주향교 전경
명륜당에서 본 공주향교 강학루 터
공주향교 강학루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