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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호서은행 본점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민족주의 독립운동
종류 건물
상태 원형보존 / 1922년에 건축된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현재 새마을금고로 이용되고 있다.
정의 1913년 5월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 본점이 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호서은행/한일은행/동일은행/배영학교/기호흥학회 
관련 인물 유진상(兪鎭相)/성낙규(成樂奎)/유진태(兪鎭泰)/성낙헌(成樂憲)/이기승(李基升)/최규석(崔圭錫)/김진섭(金鎭燮)/함태영(咸台永)
관련 내용 호서은행은 1913년 5월 예산지역 지주인 유진상(兪鎭相)·성낙규(成樂奎)·유진태(兪鎭泰)·성낙헌(成樂憲)·이기승(李基升)·최규석(崔圭錫)과 서울의 김진섭(金鎭燮)·함태영(咸台永) 등이 자본금 30만원으로 설립한 은행이다. 호서은행은 조선에서 9번째 설립된 은행이었으며, 조선인이 설립한 은행만을 대상으로 하면 5번째 설립된 민족계 은행이었다. 호서은행은 일제의 금융 침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민족자본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17년 광천지점, 1919년 천안지점·안성지점, 1921년 홍성지점, 1928년 장호원지점을 설치했으며, 1931년 1월 한일은행과 합병하여 동일은행으로 개칭되었다.

호서은행의 설립은 한말 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22년까지 은행장을 맡았던 유진상은 예산지역에 설립된 사립 배영학교를 운영했으며, 성낙규는 교장을 역임했다. 후임 사장이었던 김진섭은 성낙헌과 함께 기호흥학회에 참여했었다. 이처럼 호서은행은 계몽운동을 통해 유대관계를 형성한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민족계 은행이었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관보』, 1913년 3월 4일, 「휘보 : 상사 - 회사설립인가」.
『동아일보』, 1930년 11월 27일, 「호서은행 총회, 해산을 가결」.
『매일신보』, 1931년 1월 22일, 「동은 직제 변경」.
中村資良, 『(大正14年)朝鮮銀行會社要錄』, 東亞經濟時報社, 1925, 15~16쪽.
김성보, 「일제하 조선인 지주의 자본전환사례 - 예산성씨가」, 『한국사연구』 76,
한국사연구회, 1992, 108~110쪽.
허수열, 「호서은행과 일제하 조선인 금융업」, 『근대이행기 지역엘리트연구』 Ⅱ, 경인문화사, 2006, 341~383쪽.
김영재·김득수, 「호서은행본점의 입지배경과 그 도시적 의미」, 『한국도시설계학회지』 제14권 제5호, 2013, 141~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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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면 예산리 482
주소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482
도로명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사직로 2
위치 고증 『(대정14년)조선은행회사요람』(1925년)에 호서은행 본점의 주소지가 예산군 예산면 예산리 482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호서은행 본점은 예산읍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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