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기삼연의병 주둔지 - 문수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사찰은 비교적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현재 입구 쪽에 공사가 진행 중이다. |
| 정의 | 기삼연의병의 주둔지이자 일본군과 전투하여 크게 승리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7년 고창지역 의병활동 |
|---|---|
| 관련 조직 | 기삼연 의병부대, 김용구 의병부대 |
| 관련 인물 | 기삼연(奇參衍), 박도경(朴道京), 김용구(金容球), 이대극(李大克) 기삼연(奇參衍), 박도경(朴道京), 김용구(金容球), 이대극(李大克) 기삼연(奇參衍), 박도경(朴道京), 김용구(金容球), 이대극(李大克) 기삼연(奇參衍), 박도경(朴道京), 김용구(金容球), 이대극(李大克) 기삼연(奇參衍), 박도경(朴道京), 김용구(金容球), 이대극(李大克) 기삼연(奇參衍), 박도경(朴道京), 김용구(金容球), 이대극(李大克) |
| 관련 내용 |
문수사(文殊寺)는 고창과 장성을 잇는 해발 620m 높이의 문수산 축령산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기삼연(奇參衍) 의병장이 의병들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받은 곳이자, 의병들의 주둔지이며 일군과의 격전지였다. 1905년에 문수사에 주둔한 기삼연 의진 소속의 박도경은 모양성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고, 1907년 9월 23일 일본군과 교전해서 대승하였다. 이어 김용구(金容球) 의병부대는 이곳에서 10여 명의 일본군을 무찔러 도주케 하였다. 기삼연이 순국한 이후에도 박도경(朴道京)·김용구·이대극(李大克) 등이 이곳에 집결하여 단합을 꾀한 의미가 큰 격전지이다. 문수사는 신라 헌강왕 7년인 881년에 혜감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후의 연혁은 알 수가 없고 1835년에 중건한 바 있다. 그 후 몇 차례 중건하였고 백운암과 백련암 등의 부속 암자를 두고 있다. |
| 참고 문헌 |
김용구,『의소일기』, 190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 1970, 61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2, 1971, 94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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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
|---|---|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4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의소일기』와「이대극 공적조서」에 관련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문수사는 문수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선운사 말사이다. |














문수사 대웅전
문수사 전경
문수사 입구에서 본 문수산 고개마루
문수사 경내 입구
문수사 초입
문수사 경내에서 본 문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