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태인의병 훈련지 - 상종성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멸실 / 강당과 건물은 터만 남아 있고, 훈련장은 밭으로 개간되어 원래 모습을 찾기 힘들다. |
| 정의 | 대한독립의군 원수부사령 임병찬이 거주하며 의병을 훈련하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6 태인의병 |
|---|---|
| 관련 조직 | 대한독립의군부, 태인의병 |
| 관련 인물 | 임병찬(林炳瓚), 고석진, 최익현(崔益鉉) |
| 관련 내용 |
전북 옥구에서 출생한 임병찬(林炳瓚 1851~1916)의 본관은 평택이며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호남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에 공을 세워 낙안군수에 임명되었다. 1906년 초 고석진의 소개로 최익현을 알게 되어 태인의병의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과거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군무(軍務)의 경험을 쌓은 임병찬은 의병 모집에서 군수물자의 조달, 군사훈련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군무를 최익현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초모·군량·연병의 책임을 맡은 임병찬은 우선 각지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특히 임실·순창·태인 등 전라북도 각지의 포수를 포섭하여 전력을 갖추었다. 아울러 동학농민전쟁 당시 사용하던 무기류를 수선하고 군량을 모으는 한편, 훈련을 실시하여 태인의병의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였다. 상종성 태인의병 훈련지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 임병찬이 후일을 기약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의병을 훈련하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의병훈련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임병찬은 또한 호남의 명유지사들과 연계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거의 준비를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제시한 군율·의제·규례를 마련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1906년 6월 4일(음력 윤 4월 13일)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최익현 등과 함께 거의를 확정하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 1970, 368~38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 1971, 68~7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2, 1971, 749~75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3, 1971, 677~678쪽. 전북향토문화연구원,『전북의병사』하, 1992, 237쪽. 신규수, 「돈헌 임병찬의 구국운동」,『역사와 사회』34, 국제문화학회, 2005. 권대웅,『1910년대 국내독립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77~80쪽. 박민영,『한말중기의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01~114·223~27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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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정읍군 산내면 종성리 |
|---|---|
| 주소 | 전북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276-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돈헌문답기』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현장에는 당시의 강당과 건물터가 남아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














상종성 강당(홍학재) 터
상종성 전경
임병찬 거주지 터
임병찬 묘비와 강당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