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태서·신명선의병 주둔지 - 원통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여순반란사건의 여파로 가람이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이전의 절터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건립한 것이다. |
| 정의 | 덕유산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던 문태서·신명선·김동신 등 의병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8-1909 의병항쟁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문태서(文泰瑞)/신명선(申明善)/김동신(金東臣)/박춘실(朴春實) |
| 관련 내용 |
덕유산과 적상산 등 높고 험한 산이 많은 무주지역은 예부터 국난이 있을 때마다 구국항쟁을 벌이던 의병들의 요람이었다. 특히 을사조약과 정미조약이 강제된 뒤부터 전북 동북부를 무대로 활발히 전개된 중기의병과 후기의병의 대부분은 덕유산 자락의 계곡과 사찰 등지를 근거지로 삼아 대대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문태서(文泰瑞)·신명선(申明善)·김동신(金東臣)·박춘실(朴春實) 등이 이끄는 의병이 1908~1909년 원통사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특히 1908년 4월 13일 오전 10시경 적의 기습공격을 당하여 신명선을 비롯한 의병 수십 명이 희생된 곳이 바로 원통사 인근이었다. 원통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17세기 말엽에 이르러서야 일정한 규모를 갖추었다. 1949년 여순사건 때 소실되자 기존의 절터는 그대로 남겨두고 현재의 가람은 1976년 이후 차례로 완성되었다. |
| 참고 문헌 |
『隆熙2年8月暴徒에 관한 編冊』(忠淸, 全羅, 慶尙道) 1, 1908, 51-56쪽. 「고원중 등 17인 판결문」,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09년 10월 8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547-570쪽.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10-의병편 Ⅲ, 국사편찬위원회, 1981, 208-209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모탑건립추진위원회, 『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268-271쪽. 홍영기, 『한국독립운동의 역사』1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2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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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무주군 일안면 죽장리 |
|---|---|
| 주소 | 전북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1 |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 |
| 위치 고증 | 『폭도에 관한 편책』과「고원중 등 판결문」등을 통해 관련 내용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원통사지와 덕유산
원통사지 경내
원통사지 입구
원통사지 전경
원통사가 의병의 근거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