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공립상업학교 - 태극단 활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건물 내부는 일부 바뀌었으나 건물전체 형태와 구조는 남아 있다. |
| 정의 | 대구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의 비밀결사인 태극단이 결성되어 활동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태극단/건아대 |
| 관련 인물 | 이상호/서상교/김상길/이준윤/김정진/이원현/윤삼룡 |
| 관련 내용 |
태극단(太極團, T.K.D)은 1942년 5월 대구공립상업학교 학생 이상호(李相虎)·서상교(徐尙敎)·김상길(金相吉)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이다. 이들은 “조선민족의 이상적인 단결과 능률로서 당면 최대 목적인 조선 독립을 도모하여 투쟁할 것이며, 그 종국의 목적은 전세계 인류의 영원한 평화·자유·평등을 찾는 데 있다”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은 일본군대에 입대하지 말고, 그들의 전쟁수행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독립투쟁에 참여하자”는 문서를 돌리며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태극단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루어졌다. 단장에 이상호가 추대되고, 최고의결기구로 간부회의를 두었다. 또 특수조직인 건아대(健兒隊)를 조직하였다. 일반조직으로는 육성부 1부와 관방국(官房局)·체육국(體育局)·과학국(科學局) 등 3국을 두고, 김상길·서상교·이준윤(李浚允)을 각 국장으로 추대했다. 비서장은 김정진(金正鎭)이 맡았다. 1943년 5월 단원의 밀고로 말미암아 26명 모두 붙잡혔다. 그 가운데서 10여 명은 풀려났으나 주동자급은 달랐다. 이준윤은 고문으로 병보석 출감하였으나 3일 만에 숨졌고, 이상호·서상교·김상길·김정진·이원현(李元鉉)·윤삼룡(尹三龍) 등 6명은 징역 5~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상호와 이원현은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곧 숨졌다. 태극단은 대구지역 학생항일운동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로서 태평양전쟁 시기 학생운동의 성격과 방향을 잘 말해주고 있는 단체이다. |
| 참고 문헌 |
『조선총독부관보』 1940년 2월 1일, 「광고-생도모집(대구공립상업학교)」.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대구지적도」, 1927(대구향토역사관 소장).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833~84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 1977, 781~790쪽. 조춘호, 『태극단학생독립운동』,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총동창회, 2001.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증언자료집』 1, 2002, 598~641쪽.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증언자료집』 2, 2002, 490~533쪽. 사)거리문화시민연대, 『대구 新택리지』, 북랜드, 2007, 527쪽. 향토역사관,『 옛 사진으로 본 근대대구』, 향토역사관, 2008, 9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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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부 대봉정 60 |
|---|---|
| 주소 | 대구 중구 대봉1동 60-10 |
| 도로명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로 260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 9권과 『독립운동사자료집』 13집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관보』 1940년 2월 1일자에 대구공립상업학교의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대구공립상업학교의 본관 건물이 현재 대봉동 센트로팰리스 안에 남아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태극단 수형인 명부
대구공립상업학교(「1:10,000(昭和12年修正測圖)」, 1937,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대구공립상업학교 우측면
대구공립상업학교 좌측면
대구공립상업학교 정면
대구공립상업학교 후면
대구공립상업학교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