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전비행장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기타(비행장) |
| 상태 | 멸실 / 1988년 둔산신도시 개발과 함께 보라매공원이 조성되어있다. |
| 정의 | 1950년 7월 미 제24사단의 군수물자 보급을 위한 주요 기지로 활용되었으며 대전전투시에는 제34연대 전방지휘소가 설치되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한국전쟁 |
|---|---|
| 관련 조직 | 미군 제24사단 |
| 관련 인물 | 딘(William F. Dean) 소장 |
|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 직후 UN의 결의에 따라 1950년 7월 1일 미 지상군 제24사단이 처음으로 한반도에 투입되었다. 미 제24사단은 최초 스미스부대를 선발대로 예하부대를 오산 - 평택 - 천안 - 조치원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 구간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1950년 7월 18일 금강방어선이 붕괴되자 미 제24사단은 제34연대를 중심으로 갑천변에 대전방어선을 구축하고, 군수물자기지로 쓰고 있던 대전비행장을 전방지휘소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7월 19일 유성가도 방어선이 뚫리고 북한군 야크기가 대전비행장을 폭격하였다. 이에 전방지휘소는 충청남도청 앞 대전시청으로 옮겨졌으며, 이어 비행장은 북한군 제4사단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 대전비행장은 일제가 1940년대 유성, 공주지역 주민들을 강제동원하여 닦은 곳이었다. 1952년 공군은 이곳에 공군 항공병학교를 설립하여 전력을 증강하기 시작하였다. 전후 1956년 공군기술교육단이 경남 창원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공군 예하 각종 교육부대들이 설치되었다. 1973년 4월 개편된 공군교육사령부와 함께 공군기교단 등이 있었다가 1988년 신도시 개발로 인해 폐쇄되었다. 대전비행장은 다른 곳에 비해 활주로가 짧아 주로 교육훈련장으로 이용되었다. |
| 참고 문헌 |
육군본부,『 한국전쟁사』2, 1979, 461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126-171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244-2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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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대덕군 유천면 탄방리 |
|---|---|
| 주소 | 대전 서구 탄방동 589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북한군에 의해 미 제24사단 34연대 전방지휘소인 대전비행장이 폭격을 입었다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














대전비행장 터(현 보라매공원)
대전 상공에서 본 갑천과 대전비행장(『6·25전쟁사』4권에서 발췌)
대전비행장 터(현 보라매공원, 대전광역시청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