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화이트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
| 종류 | 기타(교량) |
| 상태 | 멸실 / 화이트교는 연천군에서 제거하여 그 원형이 남아있지 않고 그 위치와 양쪽 도로만 확인할 수 있다. |
| 정의 | 1951년 4월 미 제3사단 공병대대장 화이트 소령이 사단의 병력과 물자의 수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임진강에 임시로 목조교량을 세운 화이트교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1 중공군 춘계공세 |
|---|---|
| 관련 조직 | 미 제3사단 공병대대 |
| 관련 인물 | 화이트 소령 |
| 관련 내용 |
화이트교는 왕징면과 군남면을 연결해 주는 임진강의 다리였다. 전쟁 중 전곡읍을 탈환하고 개성 방향으로 진격하던 유엔군은 이곳에 병력과 장비가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어 도하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이에 당시 미군 공병대대 화이트 소령이 나무 다리를 급조하여 화이트교라 칭한 것이 지금까지 불리워지고 있다. 유엔군은 1951년 3월 중순 1·4후퇴로 상실한 서울을 재수복하고, 4월 초 주력부대들이 38도선 북쪽의 임진강 - 전곡 - 화천저수지 - 양양을 잇는 이른바 캔사스(Kansas) 선으로 진출하였다. 초성리 - 전곡지역은 미 제3사단 작전구역이었으며, 화이트교는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받고 고전하고 있을 무렵 세워진 교량이었다. 1951년 개통 당시 다리는 통나무 교각에 나무판자를 깐 폭이 좁은 다리였으나 1970년 잠수교 형태의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되었다. 이 다라는 여름 우기 때 임진강이 크게 범람하면 북한 측에서 다리를 유실시킬 목적으로 큰 통나무 등을 떠내려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 교각 앞에 철조 구조물을 세웠고, 다리가 물속에 잠길 경우에 물의 저항을 덜 받게 하기 위해여 난간을 세우지 않았다. 이 다리는 2003년 연천군에서 폭파시켜 철거하였으며, 그 남쪽에 큰 다리인 임진교가 새로 건립되었다. |
| 참고 문헌 |
연천군지편찬위원회,『 연천군지』, 연천군, 1987, 674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5, 519-5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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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우정리 389 |
|---|---|
| 주소 | 경기 연천군 왕징면 우정리 389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중권과『연천군지』에 의하면, 화이트교는 1951년 4월 유엔군 반격작전 시기 전곡읍을 탈환하고 개성방향으로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작전용으로 만들어진 교량이었음이 확인되며, 임진교 북쪽이 화이트교 지리임을 밝히고 있다. |














화이트교 터 동안(군남면 방향)
화이트교 터가 있던 곳(오른쪽)과 임진교(왼쪽)
화이트교 터 남서안(왕징면 방향)
화이트교 터 옆에 세워진 임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