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 임시국회의사당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한일극장이 개·보수 되고 증축되어 전쟁 당시 국회의사당으로서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전쟁 당시 임시수도가 대전에서 대구로 이전한 후 임시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낙동강방어작전 |
|---|---|
| 관련 조직 | 대한민국 임시국회 |
| 관련 인물 | 신익희 |
| 관련 내용 |
1950년 7월16일 정부는 전세의 악화로 대전에서 대구로 이동하였다. 정부는 영남의 내륙웅도인 대구를 임시 수도로 삼아 33일간에 걸쳐 건곤일척의 반격작전을 시도했다. 당시 현 한일시네마 자리인‘문화극장’은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다. 전란 32일째인 7월27일엔 임시의 사당인 문화극장에서 제 8회 임시국회를 개최하였다. 참석의원은 모두 130명이었다. 전체 210명의 의원 중 약 38%인 80명 의원들은 실종되거나 생사가 묘연한 상황이었다. 이 임시국회에서는 전 국민들이 단합하여 북한군을 물리칠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마련하는데 주력하였다. 이 회의에서 신익희(申翼熙)의장은“이럴수록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선량의 책무를 다 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전선의 불안정으로 인해 정부가 8월 17일 부산으로 천도를 실행하자 국회 역시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
| 참고 문헌 | 대구시사편찬위원회,『 대구시사』2, 대구광역시, 1995, 59-62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95-30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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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시 동성로2가 |
|---|---|
| 주소 | 대구 중구 동성로 2가 88-22 일대 |
| 도로명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39 |
| 위치 고증 | 『대구시사』2권에 의하면, 당시 한일극장이 전쟁 직후 정부가 이전하여 임시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대구 임시국회의사당(한일극장)의 우측면
대구 임시국회의사당(한일극장) 전경
대구 임시국회의사당(한일극장)의 좌측면
대구 임시국회의사당(한일극장)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