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6사단 사령부 터 - 우보초등학교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기타(학교) |
| 상태 | 멸실 / 도시개발로 원형을 찾을 수가 없고 터만 남아있다. |
| 정의 | 1950년 8월 25일 국군 제6사단 사령부가 설치되어 예하 연대를 지휘하여 북한군 제8사단의 진출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군위 전투, 영천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6사단, 북한군 제8사단 |
| 관련 인물 | 김종오 |
| 관련 내용 |
1950년 8월 25일 새벽 3시 국군 제6사단은 북한군 제8사단으로부터 40여 분에 걸친 강력한 포격을 받기 시작했다. 사단사령부를 우보초등학교에 설치한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사단의 방어선을 점검하고 진지를 사수하도록 독려하였다. 북한군 제8사단은 사격과 기동을 연결시키며 계속적으로 공격을 가해왔고, 완강하게 저항하던 국군 방어부대들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었다. 동시에 북한군 다른 1개 연대가 국통산 정면에 대한 파상공격을 쉴 새 없이 반복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국군 제6사단의 선전으로 10여 차례에 걸친 공격이 모두 좌절되자 공격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들은 청노동 - 우보 접근로에서는 전차로 증강된 북한군 제81연대가 제7연대 진지를 공격하였다. 연대는 현격한 전투력의 격차로 방어진지의 일부가 돌파되었다. 북한군은 야간에 보다 강력한 공격을 가해왔다. 이를 예측한 제2대대는 5시간에 걸쳐 혈전을 계속하였고, 다음날 03시경 적이 노매실로 침투해 좌측방을 위협하면서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국군 제6사단은 비축한 탄약이 모두 소모되자, 적을 진내로 끌어들여 백병전까지 전개하였으나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사단장은 26일 제2연대에게 예비 병력을 우보역 부근의 제방으로 추진 배치시켜 동쪽의 무명고지에 배치된 부대의 철수를 엄호하고, 28번 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적에 대처하도록 하였다. 이에 제2연대는 적이 200~300m 전방에 도달할 무렵 우보역 부근에 방렬해 둔 박격포와 57밀리 대전차포가 적 대열의 후방을 강타하였다. 아군의 기습적인 정면공격에 적은 분산되어 북쪽으로 도주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아군의 탄막에 걸려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374-37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4-3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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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이화리 |
|---|---|
| 주소 | 경북 군위군 우보면 이화리 1566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이화길 95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6사단이 1950년 8월 25일부터 26일까지 우보 일대에서 북한군 제8사단의 공격을 방어하여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였으며 제6사단사령부가 우보초등학교에 위치하면서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음이 확인된다. |














우보초등학교 교사와 운동장
우보삼거리 일대
우보초등학교 정문
28번 도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