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창녕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도로개발로 인해 당시의 모습과 매우 차이가 난다. |
| 정의 |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9일까지 미 제23연대가 북한군 제1군단 예하의 제2공격집단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낙동강돌출부 작전, 영산 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8군, 미 제2사단, 북한군 제1군단 |
| 관련 인물 | 워커, 김웅 |
| 관련 내용 |
1950년 8월 말 낙동강방어선의 돌출부 창녕 - 영산에서는 미 제2사단이 북한군 제1군단 예하의 제2공격집단과 격전을 벌였다. 미 제2사단은 미 제24사단으로부터 작전지역을 인계 받아 미 제9연대를 영산정면의 부곡리에서 남지까지, 미 제23연대를 창녕정면에, 그리고 미 제38연대를 현풍정면의 강안고지에 각각 배치하여 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북한군 제2사단 제4·제6·제17연대는 미 제23연대 예하 제1대대 정면인 내재나루터와 적포교(赤布橋) 및 삼밭머리 나루터에서 낙동강을 건너 창녕으로 뻗어있는 두 개의 접근로를 따라 미 제23연대 진지를 목표로 이동하였다. 1950년 8월 31일 밤 북한군은 미군의 포격을 받으면서 낙동강을 도하해 미군 진지를 공격하였다. 9월 1일 오전 3시경 부곡리에서 창녕으로 이르는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미 제23연대 C중대는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중대장을 비롯한 많은 병력이 피해를 입었다. 9월 3일과 4일 창녕 정면의 미 제23연대는 주매리와 모산리 및 본초리 3개소에서 북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반격을 감행하려고 하였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북한군의 공격은 9월 5일부터 대체로 중단되었으나, 창녕 정면의 북한군 제2사단이 미 제23연대를 돌파하고 본초리까지 진출하였다. 이에 미 제23연대는 본부중대 및 특수지원부대까지 편성하여 적을 저지하였다. 연대는 사단 포격과 항공 지원을 받아 전력을 다하여 적을 격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에도 북한군 제2사단은 중대규모의 부대를 후방 창녕까지 침투시켜 교란작전을 전개하였으나, 미 제2사단도 매일같이 정찰을 강화하여 미 제23연대는 창녕지역을 사수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262-26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9-3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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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본초리 |
|---|---|
| 주소 | 경남 창녕군 대지면 본초리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9일까지 창녕 일대에서 미 제23연대가 북한군 제1군단 예하의 공격집단과 격전을 벌인 것으로 확인된다. |














미 제23연대의 창녕지역 전투, 1950. 8. 31.~9. 9『,( 6·25전쟁사』5, 263쪽)
창녕에서 의령쪽으로 바라본 전경
거마삼거리 전경
유어면에서 창녕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창녕읍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