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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조선은행 본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일제수탈
종류 건물
상태 부분변형 / 1987년 본관 뒤쪽에 신관이 건립된 뒤,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의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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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관련 내용 통감부는 1905년 이래 은행권 발행과 국고관리 등 중앙은행의 역할을 겸하던 일본 제일은행 조선지점을 대신해 별도의 중앙은행을 창설하기로 방침을 확정하고, 1909년 7월 공포한 「한국은행조례」에 의거해 그 해 10월 한국은행을 설립하였다. 한국은행은 한국정부가 30%, 일본이 70%의 지분을 가진 자본금 1,000만원의 주식회사로 출발하였다. 한일합병 후, 1911년 3월 「조선은행법」이 일본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은행으로 재편되었다.

조선은행은 일본은행권과 1대1로 교환되는 법화인 은행권을 발행하는 식민지 발권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중국 만주와 화북지방 등지에 설립한 지점을 통해 조선은행권을 유통시킴으로써 일본 엔블록(円block) 확장에 첨병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일본·조선·만주·중국간의 환거래는 물론 예금과 대출업무까지 담당함으로써 상업·무역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창립 당시 조선은행은 서울에 본점을 두고 국내에 7개의 점포와 340명의 직원을 둔 자본금 1,000만원의 은행에 불과했으나, 영업을 만주·일본·시베리아·중국 등지로 확장하면서 1920년에는 조선에 10개, 만주에 17개, 일본에 4개, 시베리아에 3개의 점포와 1,914명의 직원을 둔 자본금 8,000만원의 은행으로 성장하였다. 8·15 해방과 함께 해외와 북한의 점포를 상실하여 남한에 8개의 지점만을 가지고 중앙은행 및 상업은행으로서의 업무를 계속 수행하다가, 1950년 제정된 「한국은행법」에 의거해 중앙은행의 업무만을 담당하는 현재의 한국은행으로 재편되었다.

조선은행 본관은 1907년 11월 착공해 1912년 1월에 준공한 지하1층 지상3층의 르네상스풍 건물로 철골 콘크리트 구조 외벽에 화강석을 다듬어 붙였다. 설계는 일본인 다츠노 긴고[辰野金吾]가 하였으며, 6·25전쟁 때 내부가 불에 타 1956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임시 복원하였다. 그후 1987년 11월부터 본관 복원공사에 착수하여 1989년 6월 완공하였다. 본관 2층에는 1990년 6월부터 화폐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참고 문헌 「경성시가전도」(1910) ;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32쪽.
朝鮮銀行, 『朝鮮銀行五年志』, 1915, 12~18쪽.
정재정·염인호·장규식,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 혜안, 1998, 218~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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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남대문통 3정목 110
주소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110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위치 고증 『조선은행오년지』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경성시가전도」(1910)에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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