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전 시가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시가지 정비로 인해 주변 지형 등 당시 모습을 찾기 힘들다. |
| 정의 | 1950년 7월 20일 미 제24사단이 북한군 제4사단이 대전 갑천방어선을 돌파하여 진출하자 그를 저지하기 위해 방어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금강방어선 전투, 영동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24사단, 북한군 제4사단 |
| 관련 인물 | 딘, 이권무 |
| 관련 내용 |
유성가도로 갑천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 제4사단은 1950년 7월 20일 오전 10시 경 대전비행장을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은 포병사격과 전차 단독 공격을 통해 시가지 교란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들의 공격은 미군의 철수로를 차단하기 위한 후방 침투부대가 금산가도와 경부철도를 점령할 때까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대전 시가지에서는 20일 아침 6시 30분을 전후하여 북한군 전차 3대가 보병을 탑승시키고 들어와 시내를 교란시켰다. 북한군 전차들은 충남도청 맞은편에 있던 연대지휘소(대전시청)를 지나 대전역쪽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미군 제24사단의 상황은 거의 패닉상황에 빠져 사단장이 직접 로켓트포를 들고 북한군 전차를 추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단 수색중대는 3.5인치 로켓포를 통해 북한군 전차 2대를 대전역 부근에서 파괴하고, 정오경 나머지 한 대도 파괴하였다. 이후 오후에 들어온 북한군 전차들도 모두 이 로켓포로 파괴하였다. 하지만 전차와 함께 들어온 저격병 및 편의대는 주요 지역에서 교란 사격을 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단장 딘 소장은 야간을 이용해 철수하기로 했던 계획을 바꾸어 오후 5시 30분 철수를 명령하였다. 그러나 철수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보고들은 아군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사실은 북한군이 미군 퇴로 차단 과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논산가도에서도 북한군 병력이 진입하면서 대전 방어 병력은 분산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149-171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244-2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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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대전시 대흥동 |
|---|---|
| 주소 | 대전 중구 대흥동 499-1 일대 |
| 도로명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0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같이 실린 당시 전투도를 살펴보면 유성가도와 논산가도를 통해 대전시내로 들어오는 북한군을 상대로 미군과 국군이 전투를 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두 가도가 만나던 서대전사거리와 연대 전방지휘소가 있었던 옛 대전시청(현 대전 중구청) 사이 일대를 시가전지로 특정하였다. |














미 24사단장 딘 소장의 지휘 하에 파괴된 북한군 전차
대전 상공에서 본 대전시가지(『6·25전쟁사』4권에서 발췌)
3.5mm 로켓포로 사격 중인 미군
서대전 사거리(유성 방향)
대전 중구청 앞길(서대전 사거리 방향)
서대전 사거리(논산 방향)
서대전 사거리(중구청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