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세천터널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기타(철도) |
| 상태 | 원형보존 / 세천터널은 경부선 일반철도가 그대로 다니고 있으며, 주변 지형 역시 거의 변하지 않았다. |
| 정의 | 1950년 7월 20일 대전사무소 기관사들이 미 제24사단 사단장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열차로 진입하던 중 북한군에게 집중적인 사격을 받은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대전 전투, 영동 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24사단, 제21연대, 제34연대, 북한군 제4사단 |
| 관련 인물 | 딘, 보챔프, 이권무, 김재현 |
| 관련 내용 |
대전을 방어하던 미 제24사단은 사단장 딘 소장의 명령에 따라 1950년 7월 20일 오후부터 철수를 시작하였다.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마달령에는 이미 제21연대가 옥천가도의 증약터널 부근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에 철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경부철도가 지나는 세천터널을 장악하여야 했다. 그러나 미군의 퇴로는 19일부터 이미 북한군에 의하여 차단되기 시작하였다. 북한군은 금산가도를 지나 20일 마달령 부근에 이르러 세천터널은 장악하였다. 북한군을 발견한 미 제34연대장 보챔프 대령은 증약터널에 있던 제21연대 1대대에서 경전차 소대를 지원받아 선발대원들과 세천터널로 돌아 북한군과 접전을 펼치며 터널 장악을 시도하였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세천터널이 북한군에게 장악당한 상태에서 사단장 딘 소장을 비롯한 제34연대 본부가 철수하지 못하자 대전기관사무소 소속 김재현, 현재영, 황남호 등 기관사는 딘 소장 구출을 위해 호송병을 태우고 대전역으로 향하였다. 이들은 대전역에 도착하였으나 딘 소장 구출은 커녕 화물차 견인마저 못하고, 기관차만으로 복귀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세천터널을 지나면서 대부분의 호송병과 김재현 기관사가 북한군의 사격으로 사망하고, 황남호 기관조사가 간신히 기관차를 옥천까지 이끌었다. 이후 미 제34연대 본부를 비롯한 철수 병력은 옥천가도와 금산가도를 차단한 북한군 병력의 공격을 받으면서 분산하여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딘 소장은 실종되어 북한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159-168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244-2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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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대덕군 동면 세천리 |
|---|---|
| 주소 | 대전 동구 세천동 산 12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같이 실린 전투도를 통해 북한군이 경부철도 연선에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천터널은 당시 터널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어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대전에서 철수 대기중인 미군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좌)과 미 24사단장 딘 소장
김재현 기관사 순국비
세천터널 주변 모습
세천역(대전 방향)
세천터널(옥천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