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논산가도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기타(하천) |
| 상태 | 변형 / 갑천과 주변 능선이 남아있어 주변 지형은 대강 알 수 있다. 주변 시가지와 갑천변 정비, 가수원교 개축으로 당시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
| 정의 | 북한군 남침 직후 1950년 7월 19일 미 제24사단 19연대가 대전 방어를 위해 4번 국도를 통해 올라오는 북한군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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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미 제 24사단 34연대는 1950년 7월 18일 금강방어선 붕괴 이후 유성가도와 논산가도를 중심으로 한 갑천을 방어선으로 북한군을 지연시키고자 하였다. 연대는 대전을 방어하면서 북한군의 남진을 최대한 저지한 다음 7월 19일 영동으로 철수하고자 했다. 이에 34연대는 유성가도를 주방어선으로 삼고, 논산가도에는 3대대 L중대의 1개 소대만 배치하였다. 하지만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장군은 미 제1기병사단의 영동 진입을 위해 24시간 철수연기를 명령하면서 논산가도 방어를 위해 제19연대 2대대의 증파를 지시하였다. 그런데 제19연대 병력이 도착하기 전인 19일 오전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제34연대장 보챔프 대령은 북한군의 소재를 파악하고 L중대를 가수원교 주변에 배치하여 대응하려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진지 일부가 북한군의 공격에 의해 돌파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19일 정오 제19연대 2대대가 대전역에 도착하자 즉시 논산가도에 배치되었다. 제19연대 2대대는 유등천 유천교에서부터 갑천 방향으로 전투대형을 펼치며 북한군을 공격하여 방어진지를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19연대 제2대대 진지에 대한 북한군의 공격은 밤이 되어서도 계속되었고, 20일 새벽을 지나면서 갑천변의 미군 방어병력은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적에 대한 오보 및 연대와의 통신 두절로 인하여 대대는 철수를 결정하였다. 대대는 중대 간의 통신도 두절되면서 결국 오후 1시 경 모든 병력이 보문산으로 철수하였고, 논산가도는 북한군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 2008, 138-141·146-149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244-2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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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대덕군 유천면 정림리 - 가수원리 |
|---|---|
| 주소 | 대전 서구 정림동 - 가수원동 가수원교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4권에 관련 전투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전투도를 통해 갑천을 사이에 두고 전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어 논산-대전 가도가 지나가던 가수원교를 특정하였다. |














가수원교(정림동 방향)
가수원교(하류 방향)
가수원교(상류 방향)
가수원교 원경
가수원교(가수원 방향)
가수원교(구교, 가수원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