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평창 두일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철수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6·25전쟁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
| 정의 | 중공군의 5월공세 직후 유엔군의‘돌파구 차단작전’시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가 평창일대에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중공군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지연시킨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1 현리전투, 유엔군의 돌파구 차단작전 |
|---|---|
| 관련 조직 |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 |
| 관련 인물 | 유재흥, 김종오, 김종순 |
| 관련 내용 |
평창 두일리 전투는 1951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현리 일대에서 분산 철수한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가 두일리 일대에서 병력을 가까스로 수습한 후 부근의 신 방어진지를 점령해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한 전투이다. 국군 제3군단은 현리일대에서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의 5차공세를 받아 분산 철수하였다. 군단은 4일 동안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극복하고 19일 15:00경 마침내 속사리-유천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가까스로 부대를 수습한 국군 제3군단은 부근의 신방어선을 점령해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때 제3사단은 두일리 일대에 제23연대를, 그 우측에 제22연대를 각각 배치하였다. 이 무렵 척천리 일대에서 공격준비를 완료한 중공군은 21일 15:00경에 제3사단 진지에 30여 분간 박격포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병력을 집중시켜 공격을 개시하였다.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는 상두일 - 석두루 - 탑동리를 연하는 선상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중공군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 교전을 전개하였지만, 전력의 격차로 인해 사단 철수명령에 따라 23:00경 정선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비록 연대는 저지선을 끝까지 사수하는 데는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전투를 계기로 일시적이나마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킴으로써 차후 미 제3사단의‘돌파구 차단작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572-574쪽.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현리전투』, 1988, 203-2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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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두일리 |
|---|---|
| 주소 | 강원 평창군 진부면 두일리 산 66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현리전투』203-209쪽에 의하면, 현리에서 철수한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가 두일리 일대에 급편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척천리 방면에서 남하하는 중공군을 저지하려 했음이 확인된다. |














제3군단의 방어배치(1951. 5. 20)
두일리 남쪽 고지
두일리에서 속사리로 연결되는 도로
두일리 서쪽 고지
두일리 동쪽 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