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화천 490고지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재반격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490고지를 비롯해 주변의 고지군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1년 4월 국군 제1해병연대가 와이오밍선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중공군 제40군 예하 병력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1 중공군의 4월 공세 |
|---|---|
| 관련 조직 | 국군 제1해병연대, 미 제1해병사단, 중공군 제39군 |
| 관련 인물 | 김성은, 공정식, 염봉생, 김용국 |
| 관련 내용 |
유엔군은 중공군의 4월공세에 앞서 전선을 와이오밍선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490고지 전투는 1951년 4월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된 국군 제1해병연대가 와이오밍선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중공군 제40군 예하 병력을 맞아 공방전을 펼친 전투이다. 1951년 4월 중순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중부전선의 캔사스선 방어종심을 깊게 하고 적의 공세준비를 차단할 목적으로 연천 - 고대산 - 와수리 - 화천저수지를 연하는 새로운 통제선인 와이오밍(Wyoming)선을 설정, 미 제1군단과 제9군단으로 하여금 이 선을 점령하게 하였다. 미 제9군단의 우측 공격제대인 미 제1해병사단은 화천저수지 북쪽의 와이오밍선 점령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4월 21일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미 제1해병사단은 좌로부터 미 제7해병연대, 미 제5해병연대, 국군 제1해병 연대 순으로 병진 공격을 실시해 22일 와이오밍선 부근까지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군 제1해병연대는 화천 북쪽과 동북쪽의 490고지, 486고지, 510고지를 차례로 점령하였다. 그러나 4월 22일 이른바‘중공군의 4월공세’가 시작되면서 국군 제1해병연대는 490고지와 510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후 퇴로 차단의 위협을 받고 4월 24일 다시 캔사스선으로 철수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520-524쪽.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8, 2011, 267-27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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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화천군 화천면 풍산리 |
|---|---|
| 주소 | 강원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 산 125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중권 520-524쪽에 의하면, 1951년 4월 21일-24일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된 국군 제1해병연대가 화천 북쪽 490고지에서 중공군 제40군 예하 부대와 전투를 벌였음이 확인된다. |














화천 490고지에서 양구와 파로호로 가는 도로. 반대편으로 산수화터널이 있다.
490고지 입구
산수화터널 동쪽의 양구-화천간 도로 삼거리
490고지와 일대 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