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경성제국대학 본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탄압 |
| 종류 | 건물 |
| 상태 | 부분변형 / 현재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
| 정의 | 1931년 10월 준공되어 경성제국대학의 본관으로 사용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박길룡(朴吉龍) |
| 관련 내용 |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은 1926년 4월 공식 출범한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정규대학이었다.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은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 당일인 1922년 2월 6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대학설립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물꼬를 텄다. 교육령의 개정으로 대학설립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이 일대 민족운동으로 전개되자, 일제는 조선 민중의 민립대학 설립 열기를 식히고 회유하기 위해 관립대학의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1923년 5월 청량리에 대학 예과 교사를 기공해 그해 말 본관을 준공하고, 1924년 5월 칙령 103호 「경성제국대학관제」 공포와 더불어 2년제 예과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정무총감에게 총장사무를 맡겨 예과 제1회 수료식이 거행된 다음 달인 1926년 4월 본과로 3년제 법문학부와 4년제 의학부를 개교하였다. 그런데 개교 당시 조선인 학생은 전체 정원 150명 가운데 47명, 조선인 교수는 57명 가운데 5명에 불과했다. 조선인과 조선내 일본인, 그리고 일본 본국 출신 일본인 학생에게 각각 입학 정원의 1/3씩을 할당하는 관행은 일제 말까지 지속되었다. 일제는 제국대학의 설립을 통해 ‘친일수재’를 양성하고, 식민통치에 필요한 이론·학술적 작업을 수행케 하는 한편, 일본 본국 학생들의 유치를 통해 이민을 활성화하려 하였다. 1941년에는 이공학부를 설치해 침략전쟁에 필요한 기술인력의 양성에 주력하였다. 경성제국대학은 해방 이후 경성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46년 8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미군정 법령의 공포와 더불어 국립 서울대학교로 개편되었다. 옛 경성제국대학 본관은 박길룡의 설계로 1930년 8월 착공되어 1931년 10월에 준공한 벽돌 3층 건물이다. 이 건물은 동숭동 옛 경성제국대학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해방 후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가 이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사용하고 있다. |
| 참고 문헌 |
「경성부관내도」(1934);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57쪽. 장세윤, 「일제의 경성제국대학 설립과 운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3, 347~408쪽. 정선이, 『경성제국대학연구』, 문음사,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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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동숭동 1 |
|---|---|
| 주소 |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길 3 |
| 위치 고증 | 「경성부관내도」(1934)에 경성고등공업학교(현 방송통신대 캠퍼스) 북쪽으로 경성제국대학 본부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














옛 경성제국대학 본관 - 현 문예진흥원
옛 경성제국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