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권병덕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헌법재판소 옆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의 한옥은 해방 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
| 정의 |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권병덕이 3·1운동 당시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 3·1독립만세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손병희 |
| 관련 내용 | 권병덕(權秉悳, 1867~1944)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18세 에 동학에 입도, 동학농민전쟁 시 보은의 동학교도들을 이끌고 참가했다가 관군에 진압당한 뒤 전국 각지를 방랑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일본에서 귀국한 손병희(孫秉熙)가 천도교를 일으키자 합류해 천도교 전제관장·이문관장 대리·금융관장·보문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해 2년 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 종교활동에 주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1920년 8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고등법원)권병덕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2, 1990, 23~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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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재동 36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재동 36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21-16 |
| 위치 고증 | 1919년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진행된「권동진 신문조서」 및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등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권병덕 집터
권병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