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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 - 김성수 숙소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현재 2층 양옥이 들어서 있다.
정의 기독교계 지도자 이승훈이 송진우를 만나 천도교 측의 거사 제의를 받고 독립운동(3·1운동)의 일원화 문제를 처음 논의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최린(崔麟)/송진우(宋鎭禹)/현상윤(玄相允)/최남선(崔南善)/김사용(金思容)/이승훈(李昇薰)
관련 내용 1919년 2월 초순 재동 최린의 집과 계동 김사용의 집(김성수의 숙소)에 중앙고보 숙직실에 모여 독립운동 거사를 모의하기 시작한 최린·송진우·현상윤·최남선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로 처음에 박영효·윤용구·한규설·김윤식 등 대한제국 시절 요직에 있었던 명망가들을 추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천도교계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거사를 추진하기로 하고, 최남선이 나서 평안도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활약하던 이승훈과 접촉을 시도하였다.

1919년 2월 11일 최남선의 편지를 받고 급거 상경한 이승훈은 계동 김사용의 집(김성수의 숙소)에서 최남선을 대신해 나온 송진우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송진우는 이승훈에게 독립운동 거사계획을 알리고 기독교 측의 참가를 요청하며 동지규합의 일을 부탁하였다. 이승훈은 그 자리에서 송진우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동지 규합을 위해 당일 평안북도 선천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계동 김사용의 집(김성수 의 숙소)는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이 간접적으로나마 송진우를 매개로 첫 접촉을 갖고 독립운동 일원화의 계기를 마련한 장소이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6∼17, 81∼82쪽.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2, 1990, 160∼161쪽.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9, 1994, 22∼24쪽.
동아일보사, 『인촌 김성수: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 1986, 121∼122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계동 130
주소 서울 종로구 계동 13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1919년 10월 28일 고등법원의「이인환(이승훈) 신문조서(제3회)」(『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2)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1919년 11월 22일 경성지방법원의 이춘균 등의 「공판시말서」(『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9)에 당시 김사용(김성수 숙소)의 집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승훈과 송진우가 만난 김성수 숙소(김사용 집)의 위치와 관련해서는『인촌 김성수』121쪽에 3·1운동 당시 중앙학교를 경영하던 김성수가 경성부 계동 130번지 김사용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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