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나용환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예랑(藝廊)이라는 상점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나용환이 3·1운동 당시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천도교(天道敎) |
| 관련 인물 | 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나인협(羅仁協)/손병희(孫秉熙) |
| 관련 내용 | 나용환(羅龍煥, 1864~1936)은 평안남도 성천 출신으로, 23세에 동학에 입도하여 나인협과 함께 동학농민전쟁에 참가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천도교 측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로 활동하다가 1936년 8월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1920년 8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고등법원) 나용환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2, 1990, 34~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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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간동 62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사간동 62-1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22-7 |
| 위치 고증 | 1919년 8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나용환 신문조서」 및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등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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