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완규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천일빌딩 뒤 공터로 바뀌었다. |
| 정의 |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김완규가 3·1운동 당시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 3·1독립만세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오세창(吳世昌)/권동진(權東鎭) |
| 관련 내용 | 김완규(金完圭, 1876~1949)는 서울 출신으로 한성부 주사 등을 지냈다. 한일합병 후 천도교에 입도해 봉도(奉道)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참여했다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道師)로 포교활동을 계속하였다. 해방 후 오세창(吳世昌)·권동진(權東鎭) 등과 함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관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1920년 8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고등법원)김완규 신문조서」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2, 1990, 31~3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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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연지동 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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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 서울 종로구 연지동 10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및 「(고등법원)김완규 신문조서」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김완규
김완규 집터 주변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는 민족대표들 뒷줄 오른쪽 두번째가 김완규(『동아일보』, 1921년 11월 5일)
김완규 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