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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신석구 사택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현재 수표교빌딩이 들어서 있다.
정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신석구가 3·1운동 당시 살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오화영(吳華英)
관련 내용 신석구(申錫九, 1875∼1950)는 충북 청주 출신이다.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7년 기독교에 입교해 이듬해 세례를 받고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1917년 6월 남감리회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18년 11월부터 서울 수표교교회를 담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오화영의 권유를 받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강원도·경기도·충청도 등지를 돌아다니며 목회에 전념하였다. 1939년 5월 진남포 신유리교회로 파송받아 목회할 때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면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1945년 5월 전승기원 예배와 일장기 게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용강경찰서에 연행되어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북한에 남아 목회를 계속했는데, 1949년 4월 19일 진남포 반공비밀결사조직 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6·25전쟁 때 희생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신석구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2, 1990, 80∼82쪽.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1920년 3월 2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수표정 65
주소 서울 중구 수표동 65-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1919년 8월 26일 고등법원의 「신석구 신문조서」 및 「손병희 등 48인 판결문」 등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담임을 맡고 있던 수표교교회의 목사 사택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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