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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장소진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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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가옥
상태 현재 장소진 집터는 차희식 집 앞에 있으며, 몇 년 전에 허물어져 현재는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 1919년 4월 3일 수원군 장안면·우정면 지역 3·1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장소진이 거주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3 수원군 장안면사무소 독립만세시위, 1919.4.3수원군 쌍봉산 독립만세시위, 1919.4.3 수원군 우정면사무소 독립만세시위, 1919.4.3 수원군 화수리경찰관주재소 독립만세시위, 1919.4.3 수원군 일본인 순사 처단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차희식(車喜植), 김현묵(金賢默), 차인범(車仁範), 이순모(李順模), 장제덕(張濟德), 차병혁(車炳赫), 차병한(車炳漢)
관련 내용 장소진(張韶鎭, 이명 張鳳來, 1886~1924)은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 출신으로, 장안면·우정면 지역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날 당시 주곡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1919년 4월 3일 주곡리 광장에 갔다가, 차희식(車喜植)으로부터 만세시위운동 계획을 전해듣고 적극 참여하기로 하였다.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차희식 등은 이미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도 모두 몽둥이를 가지고 장안면사무소로 모일 것을 연락하였고, 면사무소에서 면장 김현묵(金賢默)에게도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승낙을 받았다.
장안면사무소에서 면장 김현묵이 독립취지에 대해 연설한 후, 장소진은 군중들의 선두에 서서 돌과 몽둥이로 면사무소를 부수고 공문서를 파기하였다. 점차 군중들이 늘어나자 그는 차희식과 함께 시위대를 쌍봉산으로 인솔하여 그곳에서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차인범(車仁範) 등과 함께 2,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들을 인솔하여 우정면사무소로 달려가 건물과 집기를 부수고 공문서를 훼기했다.
시위대는 우정면사무소를 지나 화수리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돌을 던진 후 불태웠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가 총을 쏘며 도망치자 장소진은 차희식·차인범·이순모(李順模)·장제덕(張濟德)·차병혁(車炳赫)·차병한(車炳漢) 등과 추격하여 처단하였다.
시위 가담으로 인하여 체포된 장소진은 1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 중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4년 8월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장소진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현묵 등 27인 판결문」, 1920년 12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160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348~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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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 76
주소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7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현묵 등 27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김현묵 등 27인 판결문」에는 본적지와 거주지가 우정면 주곡리로 되어 있고 출생지는 장안면 석포리라고 되어 있다. 「장소진 공적조서」에도 우정면 주곡리로 주소지를 기록하고 있어 판결문과 공적조서에 근거하여 주곡리 76번지로 위치를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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