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발안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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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현재는 5일장이 열리지 않고 있으며, 안강현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5일장은 천변을 중심으로 시내 안쪽의 골목까지 열렸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
| 정의 | 1919년 3월 31일과 4월 5일 수원군 향남면 주민 1,000여 명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31 수원군 발안장터 독립만세시위, 1919.4.5 수원군 발안장터 독립만세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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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정근, 이봉구, 김흥렬, 안정옥, 김덕용, 홍원식, 김성렬, 안진순, 안봉순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31일(30일) 발안장터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이날 제암리를 비롯한 인근의 주민 1,000여 명은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때 일제 경찰의 발포로 면민 3명이 사상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흥분한 시위군중이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고, 일본인 소학교에 불을 지르면서 시위는 점차 가열되어 나갔다. 이로 말미암아 발안에서 정미소를 하던 사사카를 비롯한 일본인 43명이 30리 밖인 평택 삼계리로 피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미업자 사사카는 그 보복으로 4월 15일 제암리사건 당시 일본군대의 길 안내를 맡기도 하였다. 발안 인근의 마을 주민들은 4월 1일에도 발안장 주변의 산에 봉화를 올리고 시위를 하였다. 제암리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은 발안 장날 시위에 참가한 후 지속적인 시위 방법으로 야간 횃불 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들은 4월 2일 수요일 저녁 예배를 마친 후 '남포등'을 들고 진례산으로 올라가 만세시위를 벌였다. 4월 5일 정오경 이정근(李正根)·이봉구(李鳳九)·김흥렬(金興烈)·안정옥(安政玉) 등의 주도하에 팔탄면 고주리·가재리, 장인면 수촌리, 향남면 제암리 주민 800~1,000여 명의 시위대가 발안장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졌다.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하고, 칼을 휘둘렀다. 이에 이정근·김덕용(金德用) 등은 칼에 맞아 죽고, 홍원식(洪元植)·김성렬(金聖烈)·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이봉구 등은 체포되었다. 당시 체포된 사람들은 모진 고문을 받고 석방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후 진행된 일제의 제암리·고주리 학살 만행으로 인해 희생되었다. |
| 참고 문헌 |
「전국각지의 시위 상황」, 1919년 4월 2일,「조선의 독립운동에 관한 건」, 1919년 4월 9일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1)』,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4보)」, 1919년 4월 1일,「독립운동에 관한 건(제50보)」, 1919년 4월 17일 ;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화성시사편찬위원회, 『화성시사』1, 화성시, 2005, 562~564쪽 화성시·수원대학교 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 화성시, 2003. 272~273쪽.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리-001(임야원도_0001)」,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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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발안 장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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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3·1만세로 1097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1권 및 7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의 조사 결과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