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홍원식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집을 신축해서 원형은 사라졌으며 홍광천씨가 거주하고 있다. |
| 정의 | 1914년 한말 의병출신으로 항일비밀결사인 구국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1919년 4월 수원군 발안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제암리학살사건으로 희생된 홍원식이 거주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 |
| 관련 인물 | 안종후(安鍾厚), 김성열(金聖烈) |
| 관련 내용 |
홍원식(洪元植, 1877∼1919)은 대한제국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1907년 일제의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반대하면서 충남지역을 비롯 각처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의병으로 활약했다. 1910년 이후 고향 제암리에 돌아와 신교육운동에 주력하는 한편, 제암리의 안종후와 고주리 김성열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1919년에는 김성열, 안종후 등과 주동하여 3월 25일부터 3일간을 계속하여 만세시위를 벌였고, 4월 5일 1,000여 명이 모인 발안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발안주재소를 습격, 주모자로 수원경찰서에 연행되어 고문·구타당했다. 장날 만세시위에는 1천 여명의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터를 행진하였으며, 일본소학교를 불지르기도 하였다. 마침내 일본경찰과 충돌하여 그들의 무차별 발포로 3명이 부상당했다. 홍원식은 10일간의 구류 끝에 석방되었으나, 4월 15일 오후 2시경 조선인 순사보 조희창과 일본인 사사카[佐坂] 등의 안내로 제암리에 들이닥친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지휘하는 일본군에 의해 제암교회 집단학살 때 희생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2, 1971, 16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 1971, 528쪽. 경기도사편찬위원회,『내고장 경기도의 인물』3, 경기도, 2006, 503쪽. 화성시·수원대학교박물관,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 화성시, 2003, 298∼2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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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넘말) 399 |
|---|---|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68(399-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자료집』3권에 ‘수원의 양반’이라고 적혀있다.『 독립운동사』2권에도 홍원식이 언급되어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에 근거하여 위치를 확인한 것이며 현재 홍씨 일족인 홍광천씨가 거주하고 있다. |














홍원식 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