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갈말면사무소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갈말면사무소는 현재 신철원으로 옮겨져 있다. 옛 갈말면사무소가 있던 곳은 43번 국도 문혜삼거리인데,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
| 정의 | 1919년 3월 12일 철원군과 김화군의 주민이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2 철원군 및 김화군 연합 청양리헌병주재소 앞 독립만세시위/1919.3.12 철원군 갈말면사무소 앞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신성규(申聖奎)/김칠룡(金七龍)/김학길(金學吉)/전사진(全士進)/김경삼(金敬三)/김순복(金順福)/김상보(金相保)/임낙호(任洛鎬)/윤호병(尹浩炳)/황철성(黃徹性)/황희수(黃熙秀)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11일 철원군 갈말면 문혜리 서당 훈도 신성규(申聖奎)와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은 문혜리 김학길(金學吉)·전사진(全士進)·김경삼(金敬三)·김순복(金順福)·김상보(金相保), 내대리 임낙호(任洛鎬), 동막리 윤호병(尹浩炳), 토성리 황철성(黃徹性)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3월 12일 새벽 갈말면 토성리·동막리·내대리의 주민들과 김화군 도창리의 주민들은 김화면의 청양리헌병주재소가 있는 지경터로 모였고, 문혜리·군탄리 등의 주민들은 갈말면사무소가 있는 어음째로 집결하였다. 오후 1시경 청양리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군중들은 이후 문혜리로 향했다. 문혜리에 도착한 군중들은 갈말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펼쳤으며, 이때 면사무소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다. 700여 명의 군중들은 면사무소 부근을 배회하며 계속 만세시위를 펼쳤다. 피신했던 면장 황희수(黃熙秀)가 나타나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자, 군중들은 더욱 힘차게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후 군중들은 밤이 늦어져 면장의 권유로 해산하였다. |
| 참고 문헌 |
朝鮮總督府,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 1918. 「김칠룡 등 4인 판결문」, 1919년 6월 2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14보)」, 1919년 3월 13일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1, 537~53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914~916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 Ⅲ, 1992, 319~3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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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 문혜리 |
|---|---|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호국로 516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칠룡 등 4인 판결문」·『독립운동사자료집』 5권 및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14보)」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갈말면사무소의 위치는 18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1:50,000(1918)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옛 갈말면사무소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1년 촬영)
옛 갈말면사무소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1년 촬영)
갈말면 만세시위지 문혜 삼거리 전경(2021년 촬영)
옛 갈말면사무소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1년 촬영)